[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4월 30일, 일주일 만에 다시 마감이 끝났다. 마감이 끝난 김에, 예매해 둔 전시를 이번에야말로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미처 몰랐는데 마침 긴 연휴를 앞두고 있었다. 노동절 다음 곧바로 주말이 이어지고 어린이날까지 붙어 있어 뜻밖의 황금연휴가 생겼다. 온 나라가 쉬는 기쁨에 들썩이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무조건 그 기간에 돌입하기 전에 전시를 봐야 한다는 위기감이 싹텄다. 프리랜서의 몇 안 되는 특권을 이럴 때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일하는 평일 대낮에 전시장 가기.
지난번에 말했듯 2만 원짜리 쿠팡 쿠폰이 생겼고, 그냥 날리기 아까워 모처럼 전시를 보기로 했다. 현대미술 전시 중에서 집에서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고 티켓 가격이 딱 2만 원인 것을 골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5월 10일까지 열리는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가 적당해 보였다. 전시 종료일이 임박해서 언제 갈까 각을 재고 있던 참이었다.
막상 집 밖으로 나가려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내키지 않았다. 다시금 스멀스멀 ‘내가 이걸 왜 예매했을까?’, ‘그냥 다녀온 셈 치면 안 될까?’ 같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무시하고 집을 나섰다. 너무 깊이 생각하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티켓 가격과 이동 거리를 기준으로 고른 전시라 내용은 자세히 몰랐는데, 막상 가 보니 이미지보다 텍스트가 더 많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글이 나를 맞았다. 원고를 마감하고 기분 전환을 하러 갔는데 글만 잔뜩 읽다 나온 느낌이라 왠지 억울했다.
한 시간쯤 전시를 보고 건물 안팎을 잠시 걸었다. DDP는 밖에서 스쳐 지난 적은 몇 번 있었으나 안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알맹이인 전시도 물론 궁금하지만, 사실 내겐 껍데기인 건물과 주변 풍경이 더 흥미롭다. 글과 그림은 인터넷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손과 발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 굳이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DDP는 너무 매끄럽고 잘 정돈된 공간이라 딱히 마음을 간질이는 구석은 없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복합문화공간처럼 느껴졌다.
동대문이라는 구역 자체도 내겐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한때 학교도 학원도 일터도 그 근방이라 싫어도 서너 시간씩 들여 밤낮으로 오가야 했던 곳이다. 이젠 기억이 희미해져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다시 가 보니 불현듯 그 지긋지긋함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래서 건물 바깥을 더 둘러볼 마음도 완전히 사그라졌다. 근처를 지나는 지하철 노선들조차 꼴 보기 싫어졌다.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나마 덜 지긋지긋한 노선을 골라 쫓기듯 몸을 실었다.
이렇게까지 툴툴댈 거면 굳이 전시장에 안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숙제하듯 억지로 갔다 온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일정을 만들지 않으면 나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특히 올해는 5월이 되도록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이 만든 루틴은 족쇄이자 쳇바퀴다. 차마 끊지 못하고 그 안을 맴돈다. 여기에 균열을 낼 무언가가 필요하다.
강박적인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 내가 제대로 된 트랙을 돌고 있는지 점검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언제든 깨질 수 있으며, 여차하면 스스로 깰 수도 있음을 확인한다. 집착하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한다. 전시 관람은 그중 하나다.
이래저래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전시장에 다녀온 행위 자체에는 만족한다. 습기를 머금고 있던 몸과 마음이 바깥 햇볕에 말라 조금은 가뿐해졌다. 그래서 다음에도 마감이 끝나면 어디든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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