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역사 네덜란드 한인회 회장 "한인 만 명 중 절반이 입양동포"
송년음악회, 한인회 최대 행사…"음악이 동포사회를 잇는 큰 힘"
(성남=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네덜란드에 한국교육원과 한국문화원이 설립되는 게 제 꿈이자, 한인회 숙원 사업입니다. 임기 내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싶습니다."
1973년 설립된 네덜란드 한인회를 이끄는 윤원(70) 회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지난 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청와대로부터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윤 회장은 "문화원이 생기면 한국의 날 행사나 문화 프로그램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고, 한국의 각종 단체도 연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한국과 각별한 역사적 인연을 지닌 나라다. 조선 시대 최초의 서양인 음악가로 알려진 박연이 이 나라 출신이며,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헨드릭 하멜 역시 네덜란드인이다. 1907년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가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6·25전쟁 참전국으로, 한국과 깊은 우방 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인연이 깊은 나라에서 윤 회장은 50년 넘게 터를 잡았다. 주재원인 부모를 따라 17살 때 네덜란드로 간 그는 현지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치고 네덜란드의 유명 석유회사인 로열더치셸에 입사해 정년퇴직했다.
윤 회장은 "6·25 참전용사 행사가 있으면 반드시 참석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모아 네덜란드에서 사진전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참전용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이분들이 당시 대한민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참전했는데, 지금 한국의 발전 모습을 보고 너무 기분 좋아한다"고 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네덜란드 참전용사들은 모두 90대로, 자녀와 손주들이 함께 행사에 참석해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네덜란드 동포사회는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 재외동포청 집계 기준 약 1만 명의 한인 중 절반가량이 입양동포들이다. 스웨덴, 프랑스와 함께 유럽에서 한국 입양동포가 많이 정착한 대표적인 나라다.
네덜란드 입양동포 단체 '아리랑'은 올해 설립 35주년을 맞아 오는 23일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윤 회장도 이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입양동포 1세대들이 이제 50∼60대가 됐다"며 "대부분 네덜란드 사회에 잘 정착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 하지만, 한인회 행사에 참석해 교류하고 있다.
그만큼 네덜란드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는 입양동포도 적지 않다. 네덜란드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 본사가 있다. 전 세계 유일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업체로, 삼성·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줄을 서서 공급을 기다리는 네덜란드 최대 기업이다. 윤 회장은 "입양동포 중 ASML의 핵심 임원으로 일하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한인회의 가장 큰 연간 행사는 매년 연말 열리는 송년음악회다. 400명 이상이 참석하는 이 행사는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3년째 개최하고 있다.
재외동포청과 주네덜란드 한국 대사관 후원으로 열리는 행사에서 윤 회장이 주목하는 변화가 있다. 그는 "송년음악회가 거듭될수록 참여하는 젊은 차세대 동포와 유학생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참여하는 모습이 가장 큰 성과"라며 "음악이 동포사회의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행사 사회를 맡은 네덜란드 한국학생회(KSAN) 임원들을 비롯해 출연자 상당수가 20∼30대 청년들로 채워졌다. 메조소프라노 이영인, 바이올리니스트 한나은, 싱어송라이터 이하선, 색소폰 연주자 한미르, 재즈보컬리스트이자 배우인 이린아 등이 출연해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2023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동포간담회에서 환영사를 맡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두 나라의 역사적 인연과 동포사회의 현황을 소개했다.
암스테르담·로테르담·에인트호번 등 3곳에 있는 한글학교에 매년 후원하는 것도 한인회의 역할이다. 한인회 차원에서 김치 만들기 행사에 참여하고, 미술 대회와 말하기 대회, 경력 복귀 프로그램 등 차세대를 위한 사업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태권도 시범단을 체육대회에 결합하거나, 한국의 날 행사를 추진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윤 회장은 33대에 이어 34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임기 동안 임원과 운영위원에 젊은 사람들을 많이 참여시켰다. 다음에는 반드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차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이미 후계자로 점찍어둔 인물도 있다고 귀띔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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