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는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에서 전력 수급의 안정은 더 이상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전력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금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회 논의에서도 2028년까지 약 73조원 규모의 전력망 투자와 재원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고 있다. 송전탑과 송전선로 설치를 둘러싼 주민 반발과 입지 갈등으로 주요 사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같은 핵심 사업조차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전력망 확충이 단순한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분명하다. 전력망은 국가 전체를 위한 공공 인프라이지만 그 부담은 특정 지역과 주민에게 집중된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마을과 토지 소유주는 재산권 제약과 생활환경 변화, 심리적 부담까지 감수해야 한다. 반면 보상은 일회성에 그치거나 체감도가 낮다. “왜 우리 지역, 내 토지만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희생에 대한 보상’에서 ‘이익의 공유’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갈등을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이해를 함께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 대안으로 ‘전력사업 기여참여 특례 제도’를 제안한다. 현재 제도는 345kV급 이상 송전선로에 대해서만 일정한 특례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이하 송전선로가 지나는 선하지 부지와 송전탑 설치로 재산권에 영향을 받는 토지 역시 동일한 부담을 지고 있다. 이들 토지주에게도 전력사업 참여 시 ‘계통 접속 우선권’ 등 특례를 부여해야 한다. 해당 토지주나 인근 주민이 태양광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분산형 전원 사업에 참여할 경우 인허가 절차를 완화하고 전력 계통 접속을 우선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토지주를 단순한 보상 대상이 아닌 에너지 생산의 주체로 인정할 때 갈등은 줄어들고 수용성은 높아질 수 있다.
‘주민 참여형 수익 공유 모델’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전력망 사업에 지역주민이 일정 지분으로 참여하거나 수익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갈등을 줄이고 사업 추진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갈등으로 인한 지연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선제적 인센티브는 오히려 효율적인 선택이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전력 수급의 불안은 커지고 산업 경쟁력은 약화된다. 그로 인한 손실은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전력망은 국가 경제의 혈관이다. 그러나 그 혈관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 삶을 배제한 채 추진하는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전력망 갈등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희생이 아니라 참여로, 배제가 아니라 공유로 풀어야 한다. 토지주와 지역주민을 주체로 세울 때 해법은 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그 지점에 답이 있다. 전력망 확충을 ‘희생’이 아닌 ‘상생’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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