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의 '유리천장'에 균열이 생겼다. 한국 지방자치 역사 31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광역단체장 탄생이 기정 사실화됐다. 그간 '여성 0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한국이 이번 선거를 통해 상징적 돌파구를 마련했다면, 이웃 나라 일본은 정당별 공천 개혁을 통해 여성 후보 비중을 20%대 위로 끌어올리며 양적 팽창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 모두 법적 강제성 없는 '권고' 수준의 할당제에 머물러 있어,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국고보조금 삭감과 같은 강력한 제도적 장치 없이는 실질적인 남녀 동수 정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의 민주주의 대표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여성 정치 참여도에서 한국과 일본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은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 당선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상징을 확보했다. 반면 일본은 정당별 공천 제도를 통해 여성 후보 비율을 20%대 위로 끌어올리며 숫자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3일 정치권 및 선거관리위원회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양향자, 추미애 후보 간 첫 여성 맞대결이 성사됐다.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31년 만에 첫 여성 광역단체장 간 싸움이다. 남성 중심이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여성 정치인의 경력 다양성이 입증된 첫 사례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국회 여성 비율은 19% 수준이며 기초단체장은 7명에 불과했다. 광역단체장은 이번 선거 전까지 전무했다.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한국의 광역단체장 여성 후보 비율은 18.2%에 머물렀다.
일본은 일찌감치 수치 확대에 나섰다. 2023년 일본 통일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 33명 중 7명(21.2%)이 여성이었다. 정당별 편차는 뚜렷했다. 공명당(33.8%)·일본공산당(41.4%)·레이와신센구미(31.7%) 등 중도·진보 진영은 30% 이상 여성 공천을 단행했다.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은 10% 미만에 그쳐 보수 정당의 한계를 드러냈다.
법적 강제력 없는 '권고' 한계···공천 구조가 발목 잡아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 모두 공천 구조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제도는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2018년 제정한 '정치분야 남녀공동참가 촉진법'으로 남녀 동수 후보를 권고했다. 2020년 수립한 '제5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는 2025년까지 여성 후보 비율 35% 달성을 목표로 삼은 바 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없어 실질적 제재는 어렵다. 한국 역시 공직선거법상 '여성 공천 30% 권고' 조항이 있지만 법적 의무가 아니다. 매 선거마다 30% 벽을 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질적 격차도 문제다. 양국 모두 여성 후보 발굴·육성 시스템이 정당별로 파편화됐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우세 지역이나 전략공천 지역에는 남성 후보가 우선 배치되는 경향이 짙다. 정치 자금 동원력과 지역 조직력 격차가 더해지며 여성 후보의 진입 장벽을 높인다.
佛 미달 시 보조금 삭감···제도화·자율성 갈림길
국제 사회와 비교하면 한일 양국의 격차는 더욱 확연하다. 국제의회연맹(IPU)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일본 하원 여성 비율은 10%로 전체 190개국 중 165위권이다. 한국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크게 밑돈다. 40% 안팎의 여성 대표성을 유지하는 북유럽 국가들과 대조적이다.
해외 선진국은 강제과 유인을 결합한 제도를 운용한다. 프랑스는 선거법을 통해 남녀 후보 공천 비율을 법으로 규정했다. 이를 어기면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삭감한다. 북유럽 국가는 엄격한 당헌·당규로 자발적 여성 할당 40% 이상을 유지한다.
여성계는 "단순 권고가 아닌 공천 30% 의무화 같은 구조적 개입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치권 주류는 "정당의 자율적 공천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한국 정치사의 중대한 분기점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여성 광역단체장 0명' 기록은 깨졌지만 정치권 전반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공천 비율 법제화와 정당 자율성 사이에서 여성 정치 참여 논의는 실질적 제도화의 시험대에 올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정치의 전면에 여성 리더십이 자리 잡으면, 어린 세대는 성별과 무관하게 공적 영역에 진입할 수 있다는 현실적 기준을 배우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조직과 사회 전반에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낮추는 신호로 작용한다"면서 "이 흐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책과 인사 전반으로 확장될 때 정치의 합리성과 대표성은 한 단계 끌어올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광역단체장=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을 총괄하는 수장이다.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주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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