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파장…주독미군 감축 공식화
중동 경제·안보 질서도 일대 변화 전망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을 계기로 국제 안보 질서가 긴박하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당장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 감축이 본격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의 안보 지형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축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동맹국들에게 '이란전 비협조 청구서'를 내밀면서 유럽 각국이 자체 방위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는 이란 전쟁 와중에 주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역내 경제·안보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 "유럽, 공동 안보 더 책임져야"…독일은 재무장 시동
독일 정부는 주독 미군 감축에 대해 예상한 일이었다며 앞으로도 미국과 안보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한다는 입장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2일(현지시간) dpa통신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미군 병력 철수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연방군 병력 증강과 군사장비 조달 등 자국의 재무장을 언급하며 "독일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부는 최근 러시아를 자국과 유럽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한 첫 군사전략을 수립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유럽인들은 우리 안보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유럽 5개국 군사협의체를 통해 영국·프랑스·폴란드·이탈리아와 향후 과제를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앨리슨 하트 나토 대변인은 엑스(X·옛 트위터)에 "독일 내 전력 배치와 관련한 결정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과 소통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이번 조정은 유럽이 국방에 더 많이 투자하고 공동 안보에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이 GDP(국내총생산)의 5%를 국방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이후 이미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전쟁부)는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 중 약 5천명을 6∼12개월 안에 철수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 가능성을 예고한 지 이틀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에서 미국의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은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불만을 제기해왔다. 지난달 30일에는 독일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주둔하는 미군의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했을 때 그들은 없었다"고 했다.
◇ 유럽 주둔 미군 43%가 독일에…미군 핵심 작전기지
주독미군은 지난해 12월 기준 약 3만6천명으로 유럽 주둔 미군 8만4천명의 약 43%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월 2기 출범 이후 유럽 주둔 미군을 재배치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로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인 2020년 7월에도 주독미군 중 3분의 1인 약 1만2천명을 감축해 미국과 유럽 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이듬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제동이 걸렸다.
미군은 일본에 이어 독일에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둘뿐 아니라 유럽·중동·아프리카를 아우르는 해외 작전 핵심 기지로 쓰고 있다.
주독미군은 옛 서독 지역인 남부 라인란트팔츠·바덴뷔르템베르크·바이에른주에 집중 배치됐다. 슈투트가르트에 미군 유럽사령부(EUCOM)와 아프리카사령부(AFRICOM)가, 비스바덴에 유럽 주둔 육군사령부가 있다.
미군 약 1만명이 근무하는 람슈타인 기지는 미군의 해외 최대 공군기지다. 그라펜뵈어 훈련장과 란트슈툴에 있는 미군병원 역시 본토 바깥에서 최대 규모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 등에 따르면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도 이란과 전투 중 다친 군인들을 란트슈툴 병원으로 후송해 치료했다. 미국은 15억9천만달러(2조3천500억원)를 투입해 인근 바일러바흐에 더 큰 병원을 짓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주독미군 감축 이외에 기지 폐쇄·축소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달 30일 독일 내 미군기지가 "미국과 독일 양쪽 모두에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하고 있다"며 기지 폐쇄는 논의 대상이 아님을 시사한 바 있다.
주요 미군 주둔지에서는 벌써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라인란트팔츠주 람슈타인 기지와 란트슈툴 병원 인근에만 미군과 군무원, 가족 등 미국인 약 5만명이 살고 있다. 인구 약 8천명인 람슈타인미젠바흐의 랄프 헤흘러 시장은 미군 주둔으로 인한 경제 효과가 연간 20억달러(약 2조1천억원)를 넘는다고 추산했다.
◇ UAE의 독자 노선…중동 질서도 재편 예고
이란 전쟁 와중에 UAE가 OPEC 탈퇴를 선언한 것은 중동의 경제와 안보 질서에 일대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UAE의 OPEC 탈퇴 결정은 OPEC을 통해 석유 가격 등 중동 질서를 주도해온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노출된 UAE는 걸프 지역 차원의 공동 군사 대응을 기대했지만, 사우디 등 형제국들은 원론적인 지원만 했다. 이에 UAE가 걸프 지역 동맹에서 벗어나 미국에 기댄 독자 행보를 선택했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UAE의 OPEC 탈퇴를 환영했다. 또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을 거명하면서 "아마 자기 길을 가고 싶은 것 같다"고도 했다.
UAE가 이스라엘과 국방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스라엘이 UAE에 최신 레이저 방공무기 '아이언 빔'과 드론 탐지 시스템 '스펙트로'를 서둘러 보내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UAE와 이스라엘은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dada@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