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한화그룹이 방산과 조선 산업 호황에 힘입어 롯데와 포스코를 동시에 제치고 창사 후 처음으로 재계 5위에 올랐다. 그룹의 모태 사업이자 미래를 견인하는 방산이 최근 대외 여건 변화와 맞물리며 몸집과 자산이 한층 두터워졌다.
지난달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결과’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공정자산총액은 149조605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7위에서 두 계단 상승했다. 이는 전년(125조741억원) 대비 19% 늘어난 수준으로 기존 5위, 6위였던 롯데와 포스코를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다.
10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순위는 11위에서 5위로 6계단 오르고 자산 총액은 54조7000억원에서 3배 정도 불어난 셈이다. 현재 한화그룹은 재계 4위인 LG그룹을 자산 기준 37조원 차이로 바짝 뒤쫓고 있다.
▲ 작년 5위 롯데, 자산총액 0.6% 감소...6위로 밀려
반면 작년 5위인 롯데그룹의 공정자산총액은 142조4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 6위로 밀렸고 작년 6위였던 포스코그룹도 140조5840억원으로 집계돼 증가 폭이 2%에 그치며 7위로 내려앉았다.
롯데는 2024년 한 차례를 제외하면 2010년 이후 줄곧 5위를 지켜왔다. 올해 한화가 5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15년 가까이 이어져 온 ‘삼성·SK·현대차·LG·롯데’의 5대 그룹 체제에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공정위는 매년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포함해 기업 전체의 현금과 부동산 등을 포함한 총자산을 평가해 기업 집단의 규모를 평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결과를 발표한다. 이를 흔히 ’재계 순위’로 통칭하고 있다.
▲ 15년간 유지해 온 5대 그룹 체제 변화 감지
한화그룹은 방산·조선·화학·태양광 등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비약적인 성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적기 투자를 통해 방산·조선 호황에 제대로 올라탄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공정위에 따르면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방위산업 수요가 증가하며 한화를 비롯해 주요 방산 기업을 보유한 기업집단들의 자산총액 순위가 상승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작년 재계 순위 62위에서 올해 53위로 뛰어올랐고 같은 기간 LIG 역시 69위에서 63위로 상승했다.
지난 2015년 한화는 삼성그룹의 방산 계열사 2개를 인수하며 기존 탄약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기동·대공무기체계, 레이더 등 종합 방산기업로서의 사업 구조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어 2022년 그룹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집중시키고 2023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품으며 조선·해양방산까지 사업 영역을 다변화했다.
▲ 한화, 국내외 주요 기업 인수...방산 영업익 2조 돌파
2024년 말에는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지난해 호주 방산 업체 오스탈의 지분까지 확보하며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글로벌 안보 수요 확대로 이어지며 방산 해외 수출이 급증하고 조선업 역시 액화천연가스(LNG)·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 에너지 수송 선박 발주 수요 증가와 수주선가 상승 등 우호적인 업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룹 방산 사업의 핵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같은 안보 환경 변화 속에서 유럽·중동 등으로 수출을 확장하고 있다. 그 결과 2025년 연결 기준 방산 부문 매출은 10조원을 넘었고 영업이익도 2조원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화학 부문의 경우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으로 업황이 계속 어렵지만 국내 산업 전반의 구조 개편 및 고도화 정책에 따른 수급 구조 개선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태양광 사업은 미국의 중국산 태양광 수입 규제 강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수요 확대에 따른 태양광 발전 수요 성장세 등 우호적 요인이 있단 평가다.
▲ 롯데·포스코, 주력 사업 부진·성장 정체...6·7위로 하락
2022년 말 대비 작년 말 자산 증가 폭은 한화가 80%인 반면 롯데는 10%, 포스코는 6%에 그쳤다. 롯데와 포스코는 주력 사업 부진으로 성장보다는 최근 구조 조정에 주력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롯데는 유통 시장의 온라인 전환과 석유화학 산업의 중국 저가 공세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포스코도 본업인 철강 부문에서 중국과 저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관세, 보호무역주의 기조 확산, 탈탄소 전환에 따른 부담에 고심하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이차전지 소재 사업은 전기차 수요 정체로 성장세가 더딘 상태다.
한편 공정위는 작년 말 기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102개 기업 집단을 1일자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2026년 순위에는 AI 전환이란 산업 변화는 물론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나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등 지정학적 변수가 반도체, 석유화학, 방산, 조선, 철강 등 각 기업의 주력 산업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룹별 당기순이익 순위에서도 산업 변화를 명확하게 담고 있음이 발견된다. 삼성·SK·현대차그룹이 1~3위를 지킨 가운데 방산·조선 호조에 힘입어 HD현대와 한화가 LG를 따돌리고 4·5위에 올랐다. HD현대는 작년 순이익이 4조6840억원, 한화는 4조5420억원이었고 LG는 4조1650억원으로 집계됐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의 자산 총액 상승은 방산·에너지 중심의 사업 재편과 적극적인 M&A 전략이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와 맞물리며 무기체계 수요 증가란 외부 환경까지 타이밍이 일치하며 나타난 결과”라며 “한화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아 롯데를 재계 빅5에서 끌어내렸다. 다만 방산 중심의 성장 구조가 경기와 국제 정세에 크게 좌우되는 점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향후 과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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