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석주원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러온 반도체 공급망 대란이 게임 시장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AI 인프라의 급격한 확장으로 소비자용 DRAM과 NAND 플래시 물량까지 부족해지면서 관련 제품들의 가격은 1년 사이 최대 2배 가까이 폭등한 상황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폭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게이밍PC의 가격 상승을 불러오며 게임 시장 전반의 우려를 키웠다. 전 세계 콘솔게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는 최근 대표적인 콘솔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5의 가격 인상을 공식화하며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 했다.
그동안 게이밍PC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한 게이밍 기기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이제는 콘솔게임기도 가격을 대폭 인상하면서 이러한 이점을 누리기 어렵게 될 전망이다.
더욱 큰 문제는 AI 수요가 촉발한 반도체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게임기뿐 아니라 하드웨어 산업 전반의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의 메모리 소비량이 올해 이후에도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제조사들의 공급 역량이 AI 인프라에 우선 배정됨에 따라 소비자 가전 분야의 공급 부족은 2028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 콘솔게임기 이례적 가격 인상…국내 인상폭 더 커
지난달 27일 SIE는 주력 콘솔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5(PS5)의 가격을 5월 1일부로 인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내 가격은 플래그십 모델인 PS5 프로가 기존 111만8000원에서 129만8000원으로 16% 오른다. PS5 하위 모델도 디스크 모델이 27% 오른 94만8000원, 디지털 모델은 무려 43%나 오른 85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이번처럼 콘솔게임기가 출시 6년차에 가격이 인상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니의 PS 시리즈로 한정해 살펴보면 첫 기기인 PS1은 출시 당시 299달러였지만 출시 6년차에는 99달러로 약 66.9% 인하했다. 전작인 PS4도 첫 출시가 399달러에서 6년 차에는 절반인 199달러로 내렸다.
PS5 프로의 가격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미국이 기존 749.99달러에서 899.99달러로 20% 오르며 가장 높은 인상률을 보였다. 영국은 12.8% 오른 789.99파운드, 유럽도 12.5% 오른 899.99유로가 된다.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은 약 10% 중반대, 동남아시아 지역은 10% 미만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한국의 인상률은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편인데 업계에서는 최근 고환율의 영향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물가 대비 가격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책정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 높아지는 게이머 부담…시장 위축 우려
메모리 반도체 대란은 SIE와 PS만의 문제가 아니다. 닌텐도의 스위치2는 지난해 출시된 신형 하드웨어지만 지금처럼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빠른 시일 안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닌텐도는 전통적으로 하드웨어 사양을 타협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정책을 취해 왔으나 반도체 대란은 닌텐도에도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외신은 스위치2에 탑재되는 12GB 램의 가격이 40%이상 급등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닌텐도의 주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저장장치도 변수다. 닌텐도 스위치2의 내장 메모리 용량은 256GB로 최근 용량이 급증한 신작 게임들을 다수 설치하기 위해서는 추가 메모리 구매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외장 저장장치로 사용되는 마이크로SD 익스프레스 가격은 아직 큰 변동을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AI 칩 수요가 더 늘어날 경우 생산 라인이 감소될 우려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시리즈는 지난해 한발 먼저 가격을 인상했는데 여기에는 관세 등 복잡한 지정학적 관계가 엮여 있다는 것일 업계의 시각이다. 엑스박스 시리즈 역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탑재하므로 반도체 대란의 여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MS의 행보는 하드웨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하드웨어 가격의 상승이 현세대 모델의 수명을 늘리고 차기 모델 출시를 늦춤으로써 오히려 게임사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면 기술 발전이 늦춰진다는 점에서 무조건 환영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AI가 삼켜버린 반도체 생태계는 콘솔게임기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취미에서 고급 가전으로 변모시켰다”며 “게이밍 하드웨어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클라우드 게이밍 등 새로운 게임 환경의 확장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