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이 아동 인구가 25.2% 급감해 687만 6000명으로 주저앉았으나 완구 시장은 11조 원 규모를 바라보는 기이한 팽창을 시작했다. 아이용 장난감 수요가 절벽에 이른 상황에서 경제력을 갖춘 성인들이 시장의 주인을 자처하며 이뤄진 역설적 현상이다. 유년 시절의 향수를 소비력으로 치환한 키덜트족이 침체된 산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시장에서 시민들이 진열대의 장남감을 구경하고 있다. / 뉴스1
직장인들의 책상 위에 놓인 고무 인형과 무작위로 뽑은 캡슐 토이가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꿨다. NH농협은행 결제 데이터 확인 결과 2030 세대의 관련 지출은 전년 대비 224% 급증하며 장난감이 더 이상 유아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 대신 당장 손에 잡히는 촉감과 소소한 행운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미래의창 연구위원이 공동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이를 두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도파밍’ 현상으로 설명했다. 물건 구매를 넘어 일상의 긴장을 완화하고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 확산됐다. 디지털 기기에 피로를 느낀 젊은 층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손끝으로 전해지는 실재감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은 매출 증대로 연결됐다.
희귀한 캐릭터 카드 한 장이 경매장에서 24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되며 수집 시장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경제력을 갖춘 40대 남성들을 위주로 형성된 이 시장은 취미를 넘어선 대체 투자 수단으로 평가받았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1분기에만 1600건이 넘는 거래를 성사시킨 개인 판매자가 등장할 정도로 시장은 활력이 넘쳤다.
임규남 평단문화사 편집장이 엮은 “수집의 즐거움”에서는 인간이 사물을 소유하며 느끼는 원초적인 정복욕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상세히 기술했다. 한정판 피규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자산 가치를 보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굳어졌다. 과거의 보상 소비와 미래의 가치 투자가 맞물리며 완구는 이제 어엿한 재테크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유명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세계관을 현실로 구현한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군이 기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건이 됐다. 어린이용 제품 생산에 머물던 업체들은 성인 팬덤을 겨냥한 전용 브랜드를 런칭하며 생존을 도모했다. 세련된 공간 구성을 갖춘 팝업 스토어는 젊은이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으며 이는 브랜드 지배력을 확보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제 지식재산권의 여파는 세대 구분을 허물고 시장을 하나로 묶는 가교가 됐다. 기업들은 이제 제조사를 넘어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해 시장의 판도를 새로 짰으며 성인들의 수집 열망을 자양분 삼아 질주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유년 시절의 결핍을 메우는 따뜻한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밀한 계산 아래 이뤄지는 차가운 자본의 증식으로 남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든 골목의 완구점은 이제 세련된 취향과 돈의 흐름이 교차하는 성인들의 은신처로 탈바꿈해 묘한 여운을 남긴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