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권수빈 기자] 은은한 파스텔 색조와 우아한 선, 평온해 보이는 화면 이면에 숨겨진 치열한 생의 궤적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오는 8월 23일까지 열리는 '마리 로랑생 회고전 : 무지개 위의 춤'은 작가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한데 엮어 그의 굴곡진 일생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한 인간이 예술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마주하고 극복해 나갔는지 살필 수 있다.
전시의 흐름은 작가의 삶의 단계에 따라 전개된다. 프롤로그인 '육식양의 탄생'을 필두로 '세탁선의 여인', '잊혀진 여인', '무지개 위의 춤', 그리고 '장미의 여인'으로 이어진다. 몽마르트르 화단에 뛰어들었던 치열한 탐색기부터 전쟁으로 인한 뼈아픈 망명과 고립, 파리로 화려하게 귀환해 만개한 전성기까지, 관람객은 각 섹션을 지날 때마다 요동쳤던 작가의 내면이 화폭 위에 어떻게 색채와 선으로 투영됐는지 음미할 수 있다.
로랑생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강력한 키워드는 ‘여성’이다. 혼외자로 태어나 어머니와의 내밀한 유대 속에서 성장한 그는 일찍이 가부장적인 질서에 깊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와 관련해 아버지의 권위에 반발해 양을 육식동물이라 주장했던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남성의 개입이 배제된 여성들의 연대와 유토피아를 화폭에 구축했다. 미술계의 패권이 남성 화가들에게 집중돼 있던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화단에서 여성을 주체로 세운 그의 행보는 조용하지만 파격적이고 독보적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과 맞물려 독자적으로 완성되어 간 화풍의 변화도 흥미롭다. 활동 초기 그는 피카소, 브라크 등과 교류하며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았다. 도리어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분할을 자신만의 리듬감 있는 선과 장식적인 요소로 재해석했다. 그 결과,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가 보아도 단번에 로랑생의 손길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예술적 지문이 새겨졌다. 후기로 갈수록 고유의 화풍은 한층 다양해진 색채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고 있어 보는 이들을 매혹한다.
회화를 넘어선 미적 감각 또한 이번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를 위해 작업한 삽화들은 문학적 텍스트와 미술의 섬세한 조화를 보여준다. 1924년 초연된 발레 공연 ‘암사슴들’(Les Biches)의 의상과 무대 디자인까지 참여하며 자신의 비전을 3차원의 시각 예술로 확장한 대목에서는 경계를 두지 않았던 전위적인 예술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전시장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들은 시대를 뚫고 나와 관람객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건넨다.
'거울에 비친 누드' 앞에서는 인물이 내뿜는 팽팽한 긴장감과 헛헛한 공허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비평가 간바라 타이에 따르면 작가는 이 작품을 평생 장롱 속에 소중히 보관하며 아꼈다고 한다.
'키스'와 '두 친구'는 겉보기엔 한없이 부드럽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띠고 있으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층층이 쌓인 감정과 얽히고설킨 관계의 복잡성이 배어 있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를르캥'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의 억압이 짓누를 때조차 형태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로랑생의 단단하고 역설적인 저항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술사의 소용돌이와 시대의 풍랑 속에서도 마리 로랑생은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궤도를 돌았다. 전시관 벽에 새겨진, 그의 절친한 벗이었던 디자이너 니콜 그루의 셋째 딸이자 작가인 플로라 그루가 남긴 말이 이를 드러낸다. 고유의 빛깔로 빚어낸 무지개 위의 춤은 긴 세월을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짙고 아름다운 영감을 선사한다.
"우리는 마리 로랑생이 어떤 화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스스로 어떤 화파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플로라 그루, ‘사랑에 운명을 걸고’)
뉴스컬처 권수빈 ppbn0101@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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