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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이다.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다. 그 안에는 국가가 ‘일하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 변화가 담겨 있다.
노동절은 1886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쟁취 투쟁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노동절로 불렸지만, 1963년 박정희 정부 시절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산업화 시대 국가가 요구한 근면, 질서, 생산의 가치에는 ‘노동’보다 ‘근로’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그리고 62년 만에 다시 노동절로 돌아왔다. 정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을 회복하고 노동의 가치와 권리를 재조명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한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특수고용직과 같이 전통적 근로계약 관계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현실을 고려할 때, 노동절로의 명칭 변경은 시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근로’(勤勞)와 ‘노동’(勞動)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근로’의 ‘근(勤)’은 부지런함·성실함을, ‘로(勞)’는 수고와 노력을 뜻한다. 즉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의미가 강조된 표현이다.
반면 ‘노동’의 ‘노(勞)’는 육체적·정신적 힘을 들여 일하는 행위 자체를, ‘동(動)’은 움직임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신의 힘을 들여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행위’와 ‘과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서 ‘근로’는 조직과 질서 속에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성실성과 규범성을 내포한 표현에 가깝고, ‘노동’은 인간의 활동 그 자체와 권리, 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차이는 우리 법체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헌법은 ‘근로’와 ‘노동’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일할 기회와 적정한 근로조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헌법 제33조는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이른바 노동 3권을 보장한다. 이는 노동자가 근로조건의 형성과 개선 과정에 집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능동적 권리다.
이처럼 헌법에서 ‘근로’는 국가의 보호와 보장을 전제로 한 권리의 언어로, ‘노동’은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를 형성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정부가 당초 ‘노동자 추정제’로 지칭했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입법 과정에서 ‘근로자 추정제’로 명칭이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근로자 추정제는 권리 밖 일하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법의 보호 아래 들어올 수 있도록 입구를 넓히려는 시도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가 법적 보호 범위를 획정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노동자 추정제가 아닌 근로자 추정제가 됐다.
그렇다고 변화의 방향 자체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 플랫폼 노동 확대와 특수고용·프리랜서 증가로 대공장·정규직 중심의 전통적 종속 근로관계는 이미 빠르게 바뀌고 있다. 법 밖의 일하는 사람을 보호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노란봉투법, 근로자 추정제, 일하는 사람 권리에 관한 기본법 등이 모두 이런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노란봉투법은 원·하청 관계에서 실질 사용자 책임 문제를 제도권으로 끌어올렸다. 근로자 추정제는 근로자성 판단의 입증 부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에게 최소한의 권리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다.
근로감독관 명칭을 노동감독관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인 근로자 중심 감독 행정에서 벗어나 더 넓은 노동자 보호 체계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적 조치다.
다만 이런 변화는 출발점일 뿐이다. 개별 제도와 정책이 실제 권한 확보와 집행 체계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내용이다. 이름만 바꾸면 상징정치에 머물고, 내용이 바뀌어야 실질개혁이 된다.
노동감독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감독 권한과 집행 범위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추진한다면 보호 대상, 사용자 책임, 기존 근로기준법·노조법과의 관계 정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근로자 추정제를 도입한다면 근로기준법 중심 노동법 체계와의 정합성, 시장 충격, 분쟁 확대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그 토대 없이 상징만 앞서면 기대도, 혼란도 커진다.
노동계에는 선언으로 비치고, 기업에는 규제 강화로 읽히며, 현장에서는 법적 혼선으로 돌아온다. 이미 그런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5월 1일까지 도입을 목표로 했던 근로자 추정제가 소상공인들의 반발에 밀려 입법이 연기된 게 대표적이다.
노동절은 돌아왔다. 그러나 이름을 되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노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제도를 만들고, ‘근로’ 중심인 법체계와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근로를 지우는 것도, 노동을 구호로 소비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근로와 노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 그것이 노동절 이후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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