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958번지, 세청숲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자리에 수령 300년이 넘는 이팝나무 45그루가 한데 모여 자라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을 전부 뒤져봐도 이 규모의 이팝나무 자생 군락을 볼 수 있는 곳은 현재 여기가 유일하다. 조성하거나 심어서 만든 군락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수백 년에 걸쳐 보호하고 가꾼 결과로 지금껏 살아남은 자생 군락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팝나무 명소들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기슭이나 계곡 주변에 자생하는 낙엽활엽수로, 물기가 적당히 있고 햇볕이 잘 드는 땅을 좋아한다.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흰 꽃이 원추형 꽃차례로 무더기로 피어나며, 꽃이 만개하면 나무 전체가 흰 덩어리처럼 보일 정도로 꽃이 풍성하게 달린다.
쌀밥 닮은 흰 꽃, 풍년을 점치던 나무가 된 이유
이팝나무가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 여겨진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시기가 논에 모내기를 시작하는 시기와 거의 겹친다. 꽃이 풍성하게 많이 피는 해는 봄비가 적당히 내리고 기온이 고른 해인 경우가 많고, 그런 날씨 조건이 벼농사에도 도움이 된다. 농부들 입장에서는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그해 농사를 가늠할 수 있었던 셈이다. 꽃이 유독 흐드러지게 피면 그해 풍년을 기대했고, 반대로 꽃이 부실하게 피거나 일찍 지면 흉년을 걱정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이팝나무는 평범한 나무를 넘어 마을의 안녕과 먹거리를 예고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팝나무는 성장 속도가 느리고 이식에 약한 편이라, 수령이 높은 나무일수록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버텨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00년 이상 된 나무가 45그루나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기간 외부 간섭 없이 보존됐다는 증거다.
벌금 규정과 당산제, 마을이 숲을 지킨 방식
세청숲이 수백 년 동안 원형에 가깝게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마을 자체의 규율이 결정적이었다. 과거 이 마을에는 숲의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거나 베면 쌀 한 말을 벌금으로 내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쌀이 화폐처럼 쓰이던 시절에 쌀 한 말은 무거운 처벌이었고, 이 규정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숲을 훼손하지 않도록 강하게 억제했다.
여기에 매년 음력 칠월 칠석에 열리는 당산제가 더해졌다. 당산제는 마을을 지키는 신령에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로, 당산나무 또는 신성한 숲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청숲의 이팝나무들이 당산제의 무대가 됐다는 것은 이 숲이 마을 사람들에게 신앙적 의미까지 지닌 공간이었음을 뜻한다. 당산제를 통해 숲을 신성시하는 인식이 대를 이어 전해졌고, 그 인식이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매년 칠석이면 같은 자리에서 당산제가 열린다.
이팝나무 외에 세청숲에는 수령 150년 이상의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말채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다. 느티나무는 한국 농촌 마을에서 정자나무로 가장 많이 심어온 나무로, 수명이 길고 여름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덕에 마을 공동체의 모임 장소 역할을 해왔다.
45그루가 동시에 피어나는 장면, 가로수와는 다른 밀도
이팝나무 명소는 전국 곳곳에 있지만 세청숲처럼 300년 이상 된 고목 수십 그루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경우는 드물다. 나무 한 그루가 수백 년 묵으면 수형 자체가 크고 넓어지는데, 그런 나무 45그루가 동시에 흰 꽃을 피우면 숲 안의 풍경 자체가 달라진다. 꽃이 아직 덜 핀 상태에서도 이미 흰 꽃 뭉치가 고목의 굵은 가지 사이사이를 채우기 시작하고, 만개하면 숲 전체가 하나의 흰 덩어리처럼 보이는 구간이 생긴다. 4월 25일에는 군락지 현장에서 이팝꽃 예술과 만나다 행사가 열렸으며, 개화 시기마다 이런 연계 행사가 방문객을 모으는 계기가 된다.
숲 내부에는 야자매트와 나무 데크 길이 최근 새로 정비됐다. 이전에는 흙길이 대부분이어서 비가 온 뒤에는 발이 빠지거나 미끄러운 구간이 있었는데, 데크와 야자매트가 깔리면서 걷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데크 구간 중간에는 고목의 수형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지점이 있어 개화 절정기에는 이 자리를 찾는 방문객이 많다.
방문 전 챙겨야 할 정보들
교항리 이팝나무 군락지는 입장료 없이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어 별도 예약 없이 찾아갈 수 있다. 현재 화장실을 포함한 편의시설이 정비 중인 상태이므로, 방문 전에 현장 상황을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주차 공간은 입구 고목 옆에 약 10대 규모로 마련되어 있다. 개화 절정기인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주말에는 이 주차 공간이 금방 차기 때문에 이른 오전 방문이 편하다.
개화 시기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따뜻한 봄이 일찍 찾아오는 해에는 만개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고, 반대로 꽃샘추위가 이어지면 5월 초까지 꽃이 남아있기도 한다. 방문 계획을 세울 때는 출발 직전 달성군 관련 지역 채널이나 SNS에서 실시간 개화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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