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번개사업(긴급 병기개발)’으로 불린 총기 생산을 시작으로 50여년에 걸친 혁신의 과정을 밟아왔다. 그 결과, 무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며 방산산업에서 위상이 높아졌다. 현재 정부는 수출 200억달러 시대 개막, 글로벌 4강(G4) 도약을 목표로 민관 협력 확대 및 생태계 강화에 힘쏟고 있다. 여기에 국내 주요 기업들의 보폭도 빨라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은 중동 전쟁으로 방산 호황을 맞은 만큼 대규모 수주전에 뛰어들며 수출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본보는 ‘K-방산 무기 성장사’ 시리즈를 통해 국내 기업의 대표 무기를 중심으로 개발 역사와 경쟁력을 짚는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현대전의 승패는 더 이상 화력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해, 먼저 타격하는’ 전장 원칙이 전력 운용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화시스템은 레이더와 지휘통제(C4I), 전자전 기술을 기반으로 K-방산의 ‘두뇌’이자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드론과 미사일 위협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전장 대응 속도가 전력 우위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세계 전장 역시 물리적 타격 중심에서 탐지·정보·판단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한발 앞선 상황 인식과 즉각적인 대응 능력이 전력 경쟁력을 좌우하는 구조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변화의 중심에서 K-방산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핵심 기업이 바로 한화시스템이다.
한화시스템의 기술력이 집약된 분야는 단연 레이더다. 레이더는 전자기파를 송신해 돌아오는 신호를 수신함으로써 목표물의 위치와 상태를 관측하는 전천후 센서다. 과거의 전쟁이 물리적 타격 위주였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를 통해 적을 식별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군사력의 핵심 전력으로 평가된다.
“수천 개 눈으로 동시 추적”…다표적 대응능력 ‘압도’
한화시스템의 레이더 역사는 1980년대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용 레이더 개발로 시작됐다. 이후 40여년에 걸쳐 천궁 계열 중거리 지대공체계, 차기 한국형 구축함(KDDX)용 레이더 등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을 아우르는 역량을 축적해 왔다. 2020년대 들어 천궁‑II 다기능레이더와 KF‑21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의 실전·양산 체제가 완성되며 K-방산의 ‘레이더 메카’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시스템의 정밀 센서 기술 결정체는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II의 다기능레이더다. 이 레이더는 적 항공기 탐지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추적과 유도탄 교전 통제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동시에 수행한다. 복합적인 임무를 단일 레이더가 처리함으로써 포대의 운영 효율성과 생존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한화시스템의 기술력은 공중 전력 분야에서도 이어진다. 한국형 전투기 KF-21에 탑재되는 AESA 레이더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며 국산 레이더 기술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수천 개의 송수신 모듈을 개별적으로 제어해 다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는 이 기술은 첨단 전투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해외 기술 이전 없이 국내 연구개발로 완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ESA 레이더는 전투기의 ‘눈’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 장비로, 기존 기계식 또는 비능동형 위상배열 레이더보다 탐지 방향과 주파수 운용의 자유도가 높다. 이를 통해 다수 표적 추적 능력과 생존성이 향상됐으며, 반도체 기반 구조로 무게는 줄고 신뢰성은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방호 및 전자전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두드러진다. 적의 레이더 신호를 탐지하고 교란하는 전자전 장비는 아군 전력의 생존성을 높이는 핵심 방어 수단이다. 드론과 미사일 위협이 급증하는 현대 전장에서 한화시스템의 전자전·감시·감시체계 솔루션은 소형 드론부터 해상·기지·항공 전력까지 폭넓게 대응하며, 중동·유럽·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속도가 곧 생존”…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 전장’
한화시스템은 실제 운용 환경에서 정보의 선점과 공유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탐지(Sensor)에서 판단(Command), 타격(Effect)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센서와 지휘체계를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단순한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수집된 전장 정보를 기반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다양한 무기체계와 연동하고 있다. 나아가 통합 전장 인식·지휘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기술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전의 양상이 ‘네트워크 중심전’으로 완전히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한국국방기술학회 유형곤 센터장은 “최근 전장이 화력 중심에서 탐지·정보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레이더 등 센서 기술이 꾸준히 발전해온 흐름”이라며 “핵심은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하게 탐지하느냐에 있다”고 짚었다.
이어 유 센터장은 “드론이 수백 대 단위로 동시에 날아오는 상황에서는 탐지와 추적이 기본 전제이며, 탐지에서 대응까지 하나의 체계로 돌아가야 한다”며 “과거에는 무전 등으로 전달하며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센서가 탐지한 정보를 네트워크로 바로 공유하고 어떤 전력이 대응할지 자동으로 분배되는, 사실상 전장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우주로 확장된 전장…AI 결합해 통합 전장체계 고도화
전장 속도전은 육·해·공을 넘어 우주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발판이 된다. 우주가 새로운 전장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위성통신과 위성 기반 감시정찰 체계가 전장의 눈과 귀, 그리고 통신망 역할을 수행하며 전장 운용의 중요한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시스템은 저궤도 위성통신과 소형 SAR(합성개구레이더) 위성 개발을 통해 통신이 단절된 환경에서도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한 초연결 전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SAR 위성은 레이더를 활용해 지표면을 관측하는 시스템으로, 주야간이나 기상 조건과 무관하게 영상 확보가 가능하다. 전자파를 지표에 발사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의 시간차를 분석해 지형과 지표 정보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한화시스템의 소형 SAR 위성은 본체와 탑재체를 일체형으로 설계해 기존 중·대형 위성 대비 크기와 부피를 크게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개발 효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했으며, 다수 위성을 동시에 운용하는 군집 기반 감시 체계에 최적화됐다. 특히 전자식 빔조향 방식을 적용해 위성 전체를 기계적으로 회전시키던 기존 방식보다 촬영 속도와 운용 효율을 크게 개선했다.
이 같은 설계를 바탕으로 한화시스템은 소형 SAR 위성을 군집 형태로 운용해 특정 지역에 대한 재방문 주기를 30분 이하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중·대형 위성을 보완하는 준실시간 감시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우주 기반 감시·통신 체계는 방대한 데이터 처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AI) 기술과의 결합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AI를 지휘통제 체계에 접목해 복잡한 전장 상황을 분석하고 지휘관의 판단을 지원하는 지능형 전장 관리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전장 정보의 속도와 복잡성이 동시에 증가하는 환경에서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 체계는 핵심 전력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유 센터장은 “과거에는 하드웨어 중심 체계종합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소프트웨어 기반 체계종합이 더 중요해지는 흐름”이라며 “다양한 무기와 센서를 연결하고 AI로 빠르게 의사결정하는 능력이 핵심인 만큼 한화시스템과 같은 센서·소프트웨어 기업의 역할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유 센터장은 “한화시스템은 과거 대비 투자와 기술 개발이 확대되면서 역할이 크게 강화된 상황”이라며 “특히 센서, 통신, 시스템 연결 분야에서 국내 무기체계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도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지난 50여 년간 레이다(다기능레이다, AESA 레이다 등), 함정전투체계, 군전술통신체계, 군위성통신단말기, 해양무인체계, 감시정찰 위성 등 전방위 방위산업 분야에서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며 “변화하는 전장 상황에 맞춰 군에서 요구하는 무인체계 등 최첨단 무기체계 사업을 수주하고 관련 기술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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