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2] 아텐의 지평선에서① 잊힌 태양의 도시, 투탕카멘의 미소를 잉태하다: 아마르나가 남긴 파격의 유산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지난 글에서 우리는 파라오 아켄나톤이 전통의 도시 테베(현재 룩소르)를 떠나 아무것도 없던 사막 벌판에 ‘아마르나’라는 신기루 같은 도시를 세운 역사를 살펴보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 그 도시에서, 예술 역시 이전 역사 그리고 그 이후의 역사에서는 본 적 없는 파격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무덤 벽면을 비추면 가장 먼저 우리를 당혹게 하는 것은 수천 년간 이집트를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이 사라진 자리다. 기묘하게 길쭉한 인체의 선들, 그리고 무엇보다 태양의 빛줄기 끝에 사람의 손 모양을 그려 넣은 그 낯섦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은총을 굳이 ‘작은 손’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이제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아마르나’의 무덤 속으로 발을 내디뎌 본다.
예술의 정수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사막의 거친 숨결이다. 파라오의 주치의이자 신임받는 관료였던 ‘펜투(Penthu)’의 무덤 입구는 장식 하나 없이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절벽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파내어 만든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고대 이집트인들의 집념을 보여준다. 입구 주변 거친 암벽 질감은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바람에 깎이고 햇볕에 그을려 있다. 이 투박한 입구 너머로 들어가는 순간, 사막의 뜨거운 공기는 차갑고 경건한 공기로 바뀌며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또한, 문 앞에 설치된 현대의 철제 보호 시설은 이곳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인류의 자산임을 묵묵히 알리고 있다.
무덤 안으로 한 발자국 깊숙이 들어가면 거대한 돌기둥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고대 이집트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연꽃 봉우리 양식의 기둥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공간을 지탱하고 있다. 여러 가닥의 연꽃 줄기를 묶어 세운 듯한 기둥의 몸체와 그 위에서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듯 볼록하게 솟은 봉우리 장식은 이 공간이 죽은 자를 위한 어둠의 방이 아니라, 생명력이 넘치는 정원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차가운 돌을 깎아 이토록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을 만들어낸 석공들의 솜씨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기둥의 굴곡들은 무덤 깊은 곳까지 생명을 전달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듯 하다.
벽면을 채운 부조들은 당시 사람들이 신에게 바쳤던 간절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벽면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신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지금노 느낄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제단 위에는 소고기 다리와 연꽃, 각종 과일과 채소들이 정성스럽게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물들이 단순히 나열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양의 빛을 직접 받아 생명력을 얻는 유기적인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르나 시대의 예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은총이 어떻게 인간의 식탁에 닿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싶어 했던 것일까? 겹겹이 쌓인 음식의 묘사에서 당시 사람들이 누렸던 지상의 풍요와 그것을 허락한 신에 대한 깊은 감사가 전해진다.
아마르나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충격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무덤 주인과 그의 아내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리는 장면을 보면, 이전 시대의 완벽하고 이상적인 신체 비율은 찾아보기 힘들다. 약간 볼록하게 나온 배와 가늘고 긴 팔다리, 그리고 인체의 곡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사실적인 표현은 당대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신 앞에서 자신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마르나 스타일의 정수이다. 남편의 곁에서 똑같이 두 손을 들어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은 가정을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 사회의 따뜻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따뜻함이 느껴진다.
‘펜투(Penthu)’의 무덤에서 나와 ‘메리레(Meryre)’의 무덤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엄한 순례다. 가파른 절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사막의 장대한 풍경에 숨이 막힌다. 길을 안내하는 경비원들의 뒷모습을 따라 좁고 깊은 무덤 통로로 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의 신비 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입구 주변의 벽면에 빼곡하게 새겨진 ‘히에로글리프(Hieroglyphs, 고대이집트 상형문자)’와 비문들은 이곳에 잠든 이의 신분과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방문객들에게 이곳이 신성한 공간임을 알려준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이 경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고대인들의 내면을 마주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벽면 중앙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단연 태양의 신 아텐이다. 아마르나 신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 도상은 여느 시대의 신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이나 동물의 머리를 빌리지 않고 오직 순수한 빛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앙의 원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들은 질서 정연하게 아래로 향하며 세상을 빈틈없이 비춘다. 세월의 풍파로 인해 세밀한 묘사는 마모되었지만, 부채꼴로 퍼져 나가는 선들의 웅장함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태양의 절대적인 위엄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추상적인 빛의 개념을 이토록 거대한 시각적 질서로 구현해낸 고대인들의 상상력은 경이로움을 준다.
예술은 때로 화려한 제단보다 물건을 보관하던 저장고의 기록에서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선반 위에 줄지어 놓인 원뿔 모양의 항아리들과 그 아래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인물들, 그리고 무언가를 보고하는 듯한 상대방의 모습은 무덤 주인의 부를 관리하던 엄격한 체계를 보여준다. 오른쪽 벽면에는 빵이나 곡식 뭉치처럼 보이는 공물들이 빈틈없이 쌓여 있는데, 이는 사후 세계에서도 끊이지 않을 풍요를 보장받으려는 염원의 기록이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정직하게 새겨진 이 저장소의 풍경에서 우리는 고대 아마르나 사회를 지탱했던 실질적인 경제의 단면을 이해하게 된다.
서두에서 보았던 그 강렬한 전차 장면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 왜 아마르나의 예술가들은 이토록 말의 근육과 질주하는 순간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이 그림이 단순히 파라오의 위엄을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들의 다리가 겹쳐지는 순서와 긴장감을 포착해낸 솜씨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현대의 회화 기법과 비견될 만큼 혁신적이다. 전통적인 이집트 미술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념’을 그렸다면, 아마르나의 미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순간의 찰나’를 돌 위에 고정시켰다. 이 그림은 곧,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선언일 것이다.
여러 장면이 콜라주처럼 모인 이 벽면은 한 편의 서사시와 같다. 줄을 맞추어 행진하는 병사들의 절도 있는 모습과 수레를 끄는 소들의 묵직한 발걸음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특히 소들의 묘사는 무척 사실적이어서 멍에를 멘 가축의 근육과 호흡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이 거대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아마르나라는 도시 전체가 아텐이라는 유일한 태양 아래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왕과 백성, 그리고 가축들까지 모두가 신의 빛 아래 평등한 생명임을 말해주는 듯하여 깊은 울림을 준다.
가장 인간적인 왕, 그리고 가장 파격적인 예술의 정점은 왕실 가족의 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처럼 군림하던 파라오가 아내와 함께 손을 들고 신 앞에 겸손하게 서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묘한 감동을 준다. 가늘고 긴 목과 축 처진 어깨, 그리고 독특한 인체 비율은 당시 왕실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결과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기괴하다고 말하지만, 예술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 아마르나 정신의 승리다. 신의 빛을 받으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왕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무게보다는, 진리를 갈구하는 한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볼 수 있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무덤산 정상에 서면 광활한 아마르나의 대지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흐르는 나일강과 그 사이의 좁은 녹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켄아텐이 세웠던 이 신기루 같은 도시는 비록 짧은 역사를 뒤로하고 모래 속에 묻혔지만, 그가 이곳에서 꿈꾸었던 ‘진실의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무덤 벽면 깊숙이 새겨진 부조들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정해 놓은 틀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사막의 바람에 실려 오는 고대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우리는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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