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읽기 | 박상희 지음 | 세창미디어 | 228쪽
박상희 저,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읽기』(세창미디어, 2026)는 벤야민의 난해한 역사철학을 현재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풀어낸 해설서이다. 저자는 12.3 비상계엄과 같이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 벤야민의 역사철학이 왜 여전히 유효한지를 제시한다.
벤야민 역사철학의 핵심
이 책의 중심은 벤야민이 제시한 역사적 유물론과 역사주의 비판이다. 벤야민의 역사적 유물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첫째, 경제적 진보나 생산력 발전 같은 역사적 법칙이 인류를 자동적으로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경제결정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 신학과 결합하여 "현실을 제대로 논평"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역사적 유물론이다. 벤야민은 연속적이고 선형적인 진보로 역사를 보는 역사주의를 거부하며, "지금시간(Jetztzeit)"에서 과거를 "섬광 같은 이미지"로 만나는 불연속적 역사 인식을 제안한다.
역사주의 비판과 구성의 역사
역사주의는 승리자에게 감정이입하며 문화재를 야만의 기록으로 만드는 반면, 역사적 유물론은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 역사주의가 과거를 덧붙여 재구성(Rekonstruktion)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괴하고 새로 구성(Konstruktion)하는 방식을 취한다.
비상사태의 일상화와 현재적 의의
벤야민은 테제 8번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라고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한 정치적 예외상태와 갈등은 승리자의 논리로 점철된 역사주의가 지속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진보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파시즘을 불러왔듯, 역사의 개념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박상희 교수는 알레고리와 비유로 가득한 벤야민의 유고를 벤야민 자신의 다른 저술을 인용하며 풀어냈다. 저자는 이 해석이 정답이 아니라 "열린 문"이 있다고 말하며, 독자가 자신만의 역사 개념을 찾도록 안내한다. 228쪽의 소책자이지만,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한국 사회에 실천적 해답을 제시한다.
[폴리뉴스 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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