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케이조선 인수를 놓고 태광그룹이 매각 측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KHI 컨소시엄과 협상 중인 가운데 (케이조선의) 선수금환급보증 확보 능력과 재무 여력이 이번 딜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본입찰에서 태광그룹·그린하버자산운용 컨소시엄이 선수금환급보증과 자산유동화(ABL) 관련 보증 부담 등을 고려, 재무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케이조선 인수 가격을 5000억원 이하로 제시할 만큼 중형조선사에 있어 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은 예민하면서도 뜨거운 감자와 같은 존재다.
조선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하며 신조선 발주 회복과 선가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조선3사를 제외한 중형조선사(HJ중공업·대한조선·케이조선)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 발급 제약이 지속되며 수주와 기업가치 성장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업황과 금융 여건 간 괴리가 벌어지며 이들 중형조선사의 수주 기반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수주 영업 및 건조를 수행하는 국내 중형 조선 3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잇따라 수주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다만 신조선 수주에 필수인 선수금환급보증발급 지연과 한도 부족 문제가 수년째 현재진행형이어서 실제 수주 증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정책금융 기관 RG 발급 조선3사 편중
선수금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은 납기 미준수나 파산 등 조선사가 선박을 선주사에 제때 인도하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이 선주에게 선수금을 대신 지급하겠다고 보증하는 제도다. 선주사와 건조계약까지 체결해도 조선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RG를 받지 못하면 수주는 취소된다.
수주잔고를 쌓아야만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한 조선사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RG 발급이 회사의 신용도 상승으로 이어져 RG 추가발급이 가능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조선3사는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등 국책은행·정책금융 기관 3곳과 시중은행에서 쉽게 RG를 발급받는다. 반면 국내 중형 조선3사는 신용도가 낮아 앞서 소개한 3개 국책은행과 BNK부산·경남·광주은행 등 지방은행을 통해 발급받고 있다. 정책금융기관들은 대형 조선3사와 중형 3사에 모두 RG를 발급하지만 대부분 조선3사에 지원이 쏠려 있다.
최근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25년 10월 기준) 수출입은행이 발급한 RG의 99.3%(35조2752억원)는 조선3사 대상이었고 중형조선3사는 0.7%(2307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산업은행의 중형조선사 RG 발급 비중이 37%, 무보가 23.7%인 것과 비교해도 유독 낮은 수치다.
▲ 조선 불황기 중형조선사 RG 발행 금융권 손실 발생
수출입은행이 중형조선사 RG 발급에 미온적인 이유는 신용 위험 때문이다. 수은 관계자는 “총 여신 중에서 신용 여신 비중이 80%를 넘어 다른 정책금융 기관보다 리스크 관리 부담이 크다”며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거나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형조선사에 대한 지원을 급하게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2010년대 극심한 조선 불황을 겪은 정책 금융기관들이 중형조선사 지원을 기피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수은도 성동조선해양, 대선조선 등에 RG를 발급했다가 이들 조선소의 부실화로 큰 손실을 떠안은 바 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2010년대 중후반 RG 발급을 담당하던 은행 심사역들 사이에선 ‘물에 떠다니는 건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조선업계에선 수주 환경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RG 한도 부족과 금융권의 보수적 심사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가 상승과 수주 증가로 필요한 RG 규모는 확대됐지만 금융권의 발급 한도는 과거 수준에 머물며 수주 물량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설명이다.
▲ 슈퍼사이클 전환 RG 규모 확대...금융권 보수적 심사
이에 정부와 여당은 중형조선사 RG 확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일정 가이드라인만 넘으면 RG 발급에 대한 기관 면책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 정부와 무보는 중형조선사 대상 RG 특례보증 비율을 2023년 70%에서 85%로 2024년에는 95%까지 상향 조정했다. 지원 규모도 늘어 연간 실적은 2021년 243억원에서 2024년 5361억원으로 증액됐고 누적 기준으로는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섰다.
무보는 지난달 중형 조선3사에 5400억원 규모의 RG를 공급하며 단기적인 금융 애로 해소를 적극 추진했다.
다만 이러한 지원은 개별 프로젝트 중심의 특례 성격이 강해 업황 회복에 따라 급증하는 RG 수요를 항상 뒷받침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 무보, 중형조선사 RG 특례보증 비율 95% 상향
무보를 제외한 금융기관 역시 조선업 특성상 보수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선박 건조 기간이 보통 3년 이상 소요되며 수익 실현이 지연되는 산업 구조상 조선사의 재무 변동성이 크고 프로젝트별 리스크가 상이해 일괄적인 보증 확대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중형조선사의 RG 문제는 수주를 넘어 기업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암코-KHI 컨소시엄이 추진 중인 케이조선 M&A에선 RG 확보 능력과 재무 여력이 핵심 변수로 작용하며 원매자인 태광 컨소시엄이 인수가격을 보수적으로 제시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RG 발급 한도와 금융 접근성이 향후 수주 확대 가능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케이조선의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할인) 요인으로 반영되는 형국이다.
즉 RG 확보 능력이 △수주 확보 △실적 가시성 △기업가치까지 이어지는 핵심 변수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RG 지원이 조선업 수주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제도 보완과 금융권(시중은행 포함)의 참여 유인 확대가 필요하단 제언이 나온다.
조선업계 전문가는 “향후 조선산업 전망이 밝은 만큼 각 금융기관이 RG 한도를 늘려줄 필요가 있다”며 “정책금융 기관뿐 아니라 민간 금융 영역도 협력해서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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