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소비되는 시대다. 주류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발효조 안에서 배양된 효모와 인공적인 온도 조절을 통해 단 며칠 만에 수만 리터의 술이 쏟아져 나온다. 효율성과 속도가 미덕이 된 현대 사회에서, 술을 빚는다는 것은 기다림의 예술에서 공학적 계산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러나 이 숨 가쁜 속도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전통주가 있다. 인간의 조급함을 허락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시간과 우주의 섭리가 완벽히 맞아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비로소 탄생하는 술이다. 발효에서 증류까지 무려 100여 일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궁극의 슬로우 소주, 바로 '삼해소주'(三亥燒酒)다.
삼해(三亥)라는 이름은 '세 번의 돼지날'을 의미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날짜를 셀 때 십이지신(十二支神)을 활용했는데, 이 중 해일(亥日)이 바로 돼지날이다. 삼해소주는 1년 중 가장 춥다는 음력 정월(1월)의 첫 번째 돼지날에 밑술을 담근다. 이후 12일이 지나 두 번째 돼지날이 돌아오면 덧술을 하고, 다시 12일 뒤 세 번째 돼지날에 마지막 덧술을 해서 빚어낸다.
왜 하필 돼지날이었을까? 돼지는 예로부터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술이 풍성하게 잘 익기를 바라는 주술적 기원이 담겨 있다. 또한 십이지신 중 마지막 동물인 돼지는 시간상으로는 밤 9~11시인 해시(亥時), 계절상으로는 만물이 생명력을 응축하고 겨울잠을 자는 늦가을부터 겨울을 상징한다. 즉, 해일(亥日)은 가장 차갑고 음기가 강한 날이다. 삼해소주는 이 강렬한 음기의 날을 골라 양의 기운인 발효를 다스리는, 음양오행의 철학이 깊게 배어있는 술이다.
삼해소주의 역사는 기록된 문헌을 통해 그 유구함을 증명한다. 고려 후기의 대문호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백주, 녹파주, 이화주 등과 함께 삼해주가 언급된다. 이는 이미 1천 년 전 고려 시대부터 한반도의 술 문화 속에 삼해주의 제법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려의 귀족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용해 술을 빚고, 그 기다림 끝에 얻은 맑은 술을 즐기며 시를 읊었다.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 삼해주는 명실상부한 '한양의 명주'로 군림한다. 한양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세련된 미식의 도시였다. 그 중심에 삼해주가 있었다. 조선 전기의 백과사전적 문헌인 '고사촬요'나 중기의 '음식디미방' 등 수많은 고조리서에 삼해주 제법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이 술이 당대 지식인 계층의 필독서에 오를 만큼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었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삼해주는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 고결한 술의 이면에는 엄청난 곡물 소모라는 사치스러움이 숨어 있었다. 세 번에 걸쳐 다량의 쌀과 누룩이 투입되고 발효 기간마저 길다 보니, 한 독을 빚는 데 들어가는 쌀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일반 평민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대부와 부유층을 위한 철저한 '하이엔드 리큐르'였던 셈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영조 임금이 재위 기간 내내 내린 강력한 금주령의 주된 표적 중 하나가 바로 이 삼해주였다. 정월 돼지날만 되면 집집마다 앞다투어 술을 빚어 도성의 쌀값이 폭등하고 식량난이 발생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영조실록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삼해주를 빚느라 곡식을 허비하는 폐단이 크니 이를 엄단하라"는 기록이 수차례 등장할 정도로 삼해주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독한 단속 속에서도 양반들의 삼해주 사랑은 꺾이지 않았다. 도성 안에서 술을 빚기 어려워지자 이들은 단속의 눈길이 덜 미치는 도성 밖 마포나루로 눈을 돌렸다. 마포나루는 전국의 세곡선이 모여드는 물류의 중심지였기에 품질 좋은 쌀을 구하기 가장 쉬운 곳이었다. 또한 한강 변의 서늘한 강바람은 저온 숙성을 생명으로 하는 삼해주를 빚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마포의 객주는 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대규모로 삼해주를 빚었고, 이를 은밀히 도성 안 양반가에 공급했다. 마포나루는 물자가 오가는 항구를 넘어, 한양의 미각을 책임지는 거대한 양조 기지였던 것이다.
우주적 철학 말고도 현대 과학의 렌즈로 들여다봐도 삼해주의 제법은 경이롭다. 가장 추운 한겨울에 시작해 봄이 올 때까지 약 100일 이상을 저온에서 발효시킨다. 일반적으로 전통주는 온돌방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발효를 촉진시키지만, 삼해주는 정반대로 차가운 겨울 온도에 발효조를 내맡긴다. 이는 서양의 맥주 역사에서 혁명으로 불리는 '라거'(Lager)의 저온 발효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온도가 낮으면 효모의 활동이 둔해져 발효 속도가 느려지지만, 대신 잡균의 번식은 완벽하게 차단된다. 천천히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알코올의 거친 입자는 부드럽게 다듬어지고, 쌀 본연의 단맛과 은은한 향기가 술독 안에 고스란히 갇히게 된다.
세 번에 걸쳐 곡물을 덧대어주는 '삼양주'(三釀酒) 기법은 이 느린 발효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과정이다. 100일의 뼈를 깎는 숙성을 거쳐 맑고 옅은 황금빛의 명주가 완성되는데, 이것이 바로 '삼해약주'(三亥藥酒)다. 삼해약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은은한 꽃향기와 깊은 감칠맛을 지닌 최고급 발효주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맑은 약주를 소주 고리에 한 번 더 끓여내면 비로소 투명하고 순도 높은 한 방울의 진주 같은 삼해소주가 탄생한다. 삼해약주가 모태라면 삼해소주는 그 정수만을 뽑아낸 결과물인 것이다.
삼해소주와 삼해약주의 현대적 부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두 개의 유서 깊은 가문을 주목해야 한다. 1993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삼해주'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 두 갈래의 명확한 전승 계보로 나뉘어 보존되고 있다. 먼저 안동 김씨 가문의 비주로 전해 내려온 '삼해약주'가 있다. 조선 순조의 딸인 복온공주가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오며 궁중의 제법이 전해진 것이 그 시초다. 이 가문의 며느리인 권희자 명인은 시어머니로부터 그 비법을 전수받아 2025년 1월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아 증류 전 단계인 우아하고 깊은 약주의 명맥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다만 상업양조를 하지 않기에 그 술의 맛을 보기는 쉽지가 않아 명인이 소속된 서울무형유산교육전시장을 통하는 것이 그나마의 방법이다.
또 다른 줄기는 통천 김씨 가문의 '삼해소주'다. 이 집안의 며느리였던 고(故) 이동복 명인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삼해주 제법을 전수받아 1993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으며 삼해주의 부활을 이끌었다. 이동복 명인의 뒤를 이어 그 강렬하고 투명한 증류주의 매력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가 바로 아드님인 고(故) 김택상 명인이다.
이처럼 삼해주는 안동 김씨 가문의 약주와 통천 김씨 가문의 소주라는 두 기둥에 의해 지탱돼 온 셈이다. 서로 다른 가문에서 며느리와 아들로 이어지는 이 숭고한 전승의 역사는 우리 전통주가 가진 인문학적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김택상 명인이 2021년 타계한 후 보유자는 공석이 됐지만, 그와 뜻을 함께했던 김현종 대표와 젊은 제자들이 마포에 '농업회사법인 삼해소주'를 설립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수백 년 전 영조의 금주령을 피해 마포나루 객주가 은밀하게 이 술을 빚던 그 역사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이들은 명인이 사용하던 소형 동증류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대량 생산의 유혹을 뿌리치고 삼해소주 특유의 품질과 철학을 묵묵히 고집하고 있다. 45도의 시그니처 소주부터 알코올 도수 70도가 넘는 농밀한 삼해귀주까지, 과거 마포 상인들이 취급하던 그 치명적이고 고급스러운 향기가 현대의 마포에서 또다시 빚어지고 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임금의 어명조차 무시하며 삼해소주를 찾았을까? 잔에 따르는 순간 알코올의 타격감 대신 갓 지은 쌀밥의 달콤한 향과 구운 견과류의 고소함, 그리고 들꽃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입에 머금으면 45도라는 도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혀를 감싸는 질감이 부드럽다. 목을 타고 넘어간 후에는 뱃속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인공적인 첨가물로는 결코 낼 수 없는, 오직 100일간의 저온 숙성과 삼양주라는 고된 공정만이 허락하는 마법이다.
삼해소주와 삼해약주는 맛있는 전통주를 넘어, 우리가 잊고 지낸 '기다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거울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 정성을 다하는 태도. 효율과 속도로 무장한 서양의 증류주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무기가 바로 이 100여 일의 고독한 시간 속에 스며들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가장 창의적일 수 있는지를 이 투명한 액체는 온몸으로 증명한다 할 수 있다. 돌아오는 겨울, 정월의 첫 돼지날이 되면 내 잔을 채워줄 맑고 투명한 시간 한 방울을 기다려보자. 그 기다림의 끝에 우리는 비로소 조선의 수많은 양반이 그토록 탐닉했던, 아니 1천 년 전 고려의 문인이 꿈꿨던 그 고결한 향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