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명했고,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에는 정면으로 맞섰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다음 달 15일로 8년의 의장 임기를 마친다. 그러나 그는 통상적인 관행과 달리 곧바로 연준을 떠나지 않고, 이사직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적 보복’ 기조 속에서 자신을 겨냥한 법적·정치적 공세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연준의 독립성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월가 투자은행 출신에 조지 H.W. 부시 행정부 재무부 차관을 지낸 파월 의장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준 이사가 됐다. 공화당 성향의 보수적 인사였던 그는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손에 의해 재닛 옐런 전 의장의 뒤를 이어 연준 수장이 됐고, 2022년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재신임을 받아 4년 더 의장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두 대통령 사이의 정치 지형 변화 속에서,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돌은 그에게 ‘보수적 공화당원’이라는 원래의 이미지 대신 ‘반(反)트럼프’ 상징성을 덧씌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에게 중간 이름을 비틀어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열성 지지자였다가 돌아선 마조리 테일러 그린 전 하원의원을 ‘마조리 트레이터(배신자) 브라운’이라 부른 것처럼, 파월 의장에게는 “제롬 투 레이트(too late·너무 늦은) 파월”이라는 별명을 달았다. 자신이 거듭 요구한 기준금리 인하에 파월 의장이 “너무 늦게 반응한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파월 의장이 맞닥뜨린 최대 난제는 팬데믹 이후 치솟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연준은 2020~2021년 사실상 제로 금리(0.00~0.25%)를 유지하며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이 자금이 물가 급등을 자극했다. 파월 의장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5%대까지 가파르게 올리는 강경 매파 노선을 택했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복귀했을 당시 미국 기준금리는 4.25~4.50% 수준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은 달랐다.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국채 이자율을 낮춰 정부 부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계산 아래, 그는 “금리가 1%대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연준의 이중 목표를 우선한 파월 의장은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다섯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시장 상황을 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폭발했다. 그는 “그(파월)와 잘 맞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데 이어, 지난해 5월부터 파월 의장을 “너무 늦은 이”라고 부르며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원색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압박은 말에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청사 개보수 공사 비용을 문제 삼아 연준을 직접 압박하는 ‘실력 행사’에 나섰다.
역대 대통령들이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해 자제해 온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워싱턴 DC 연준 청사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았다. 그는 안전모를 쓴 파월 의장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서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표면적인 명분은 공사 현장 점검이었지만, 실제 의도는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연준은 결국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는 물가와 고용 여건을 감안한 시장의 예상 범위 내 결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던 ‘대폭 인하’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통령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인사권을 통한 연준 길들이기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측근 스티븐 마이런을 전임자 사임으로 공석이 된 연준 이사 자리에 지명했다. 같은 달 말에는 매파로 평가받던 리사 쿡 연준 이사를 주택담보대출 사기 정황을 이유로 전격 해임했다.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한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백악관 참모를 연준 이사로 앉히고, 대통령과 견해가 다른 이사는 논란이 끝나기도 전에 해임한 이 두 건의 인사 결정은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을 심각하게 흔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쿡 이사 해임은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소송으로 이어졌고,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미국 언론은 이사직 유지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파월 의장은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쿡 이사 사건의 대법원 공개 변론을 직접 방청했다. 그는 “이 사건은 아마도 연준 113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법적 사건일 것”이라고 강조하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법적 공방의 무게를 드러냈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 들어 미 법무부가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과다 지출 의혹과 관련해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양측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월 의장은 지난 1월 11일 “연준 청사 개보수에 대한 지난해 6월 나의 의회 증언과 관련해,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지난 9일 받았다”고 공개했다.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 개시는 전례가 없었다. 파월 의장이 영상 성명을 통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형사 기소 위협은 연준이 대통령의 선호를 따르기보다 공공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방향에 따라 금리를 결정해 왔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직격했다.
이 수사는 이후 애매한 형태로 중단됐다. 파월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 후보자의 연방 상원 인준 과정에 부담이 된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수사와 그 여파는 연준의 ‘수난사’로 남게 됐다.
파월 의장은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독립성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최근 법무부로부터 해당 수사 종결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며 “최근 상황 전개를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절차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수사가 투명하고도 최종적으로, 완벽하게 종결될 때까지 이사회를 떠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여전히) 이를 견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상 연준 의장은 임기 종료와 함께 이사직 잔여 임기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지만, 파월 의장은 이를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현재 규정상 그는 최장 2028년 1월까지 연준 이사로 남을 수 있다.
그의 결정 배경에는 청사 개보수 비용을 고리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나의 우려는 연준에 가해지는 일련의 법적 공격”이라며 “이는 우리가 정치적 고려 없이 통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언제든 수사가 재개될 수 있고, 형사 절차와 별개로 민사 책임 추궁이 뒤따를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파월 의장의 이사직 유지 가능성을 두고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지난 15일, 파월 의장이 의장 임기 종료 후에도 이사로 남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그를 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당분간 이사로서 계속해서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조용히 소임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자신을 이사직에서 해임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재충돌 가능성도 열어둔 셈이다.
보수적 공화당원 출신으로 출발했지만, 임기 마지막 1년 동안 전례 없는 정치적 압박과 법적 공세 속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둘러싼 ‘사상 초유’의 대립을 겪은 파월 의장의 퇴장은 그래서 더 미완(未完)에 가깝다. 그가 남기로 한 이사석은, 트럼프 시대 미국 중앙은행의 고난기와 이후를 관통하는 상징적 무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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