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벗은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 감형 등 유화 움직임
정권측, 국제 고립 탈출 추진…'81세 고령' 건강 우려도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2021년 미얀마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5년 넘게 갇혀 지낸 아웅산 수치(81) 미얀마 국가고문의 수감 생활이 조만간 끝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군사정권 수장에서 민간인 대통령으로 옷을 갈아입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대통령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치 고문의 신병 문제에 대해 차츰 전향적으로 자세를 바꾸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지난 1월 수치 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등 야권을 배제한 '반쪽짜리 총선'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 세력을 앞세워 '압승'한 뒤 이달 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절대 권력을 여전히 움켜쥔 채 옷만 군복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은 셈이지만, 이후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은 수치 고문 등 민주세력과 반군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우선 지난 17일 미얀마 달력상 새해 첫날을 맞아 실시한 사면에서 수치 고문의 징역 27년을 22년 6개월로 4년 6개월 감형했다.
또한 수치 고문의 최측근으로 2018년부터 쿠데타 당시까지 대통령을 맡아 민주 정부를 이끌어온 윈 민트(75) 전 대통령을 사면, 석방했다.
이어 지난 21일에는 민주 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 산하 시민방위군(PDF) 등 반군 단체들을 향해 오는 7월 말까지 100일 안에 평화회담을 열겠다며 참가를 제안했다.
여기에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은 지난 22일 시하삭 푸앙껫께우 태국 외교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수치 고문을 잘 보살피고 있으며 "좋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시하삭 장관은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해 "이는 좋은 신호일 것"이라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 같은 미얀마 정권의 자세 변화는 무엇보다도 군사정권에서 민간 정부로 외피를 바꾼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정권은 중국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한 국제사회에서 합법 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각종 제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비록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최소한의 형식적 정당성은 갖추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정권을 인정받고 대외적 고립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의 구상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1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미얀마의 평화와 화해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미얀마가 속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관건 중 하나가 수치 고문의 석방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령에 장기 수감 생활 중인 수치 고문의 건강을 둘러싼 우려도 석방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수치 고문의 아들 킴 에어리스는 지난해 9월 어머니의 심장질환이 악화하고 있다면서 생존 여부를 비롯한 건강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미얀마 당국은 작년 12월 수치 고문의 건강이 양호하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에어리스는 정권 측이 수치 고문에 대해 외부 접견은 물론 최근 사진이나 의료 상태 확인 등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면서 그가 이미 숨졌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들은 수치 고문의 생존 여부를 입증할 것을 정권 측에 요구하는 '생존 증명'(Proof of Life)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 교도소 관계자와 동료 수감자 등에 따르면 수치 고문은 적어도 2024년 초까지는 거동과 목소리 등 외관상으로는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수감 기간 체중이 이전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 데다가 여름철 극심한 폭염과 열악한 교도소 환경에서 건강이 나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수치 고문이 옥중에서 숨지기라도 할 경우 미얀마 정권의 국제적 평판은 한층 악화하고 그만큼 국제사회로의 복귀도 멀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사정권과 대립해 온 아세안도 이제 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미얀마 정권의 자세 변화를 돕고 있다.
시하삭 장관은 지난 22일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과 만나기에 앞서 "우리는 그들의 아세안 복귀를 지지한다"면서 "우리의 정책은 그들을 복귀시키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들이 아세안에 복귀하려면 아세안의 우려 사항에 대응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수치 고문의 감형, 윈 민트 전 대통령의 석방과 같은 조치들이 앞으로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필리핀도 최근 미얀마 정권의 사면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수치 고문을 포함한 더 많은 수감자 석방을 촉구했다.
필리핀은 지난 24일 의장국 성명에서 "우리는 미얀마가 아세안의 불가결한 부분으로서 자국 내 정치 위기에 대한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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