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장기화된 고금리와 소비 위축으로 전국 상가 시장이 깊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때 '건물주가 곧 갑'이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용한 화랑 골목에서 출발해 감성 카페와 디자이너 숍들이 모여들며 전성기를 누렸던 이 거리는 현재 메인 상권 점포 절반가량이 비어 있다. 보증금 없이 수개월 치 월세만 선불로 받겠다는 이른바 '깔세'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을 정도다.
20년간 현지에서 중개업을 해온 한 공인중개사는 "예전에는 학생들 장래희망이 '가로수길 건물주'였을 만큼 상징적인 상권이었다"며 "건물주 말 한마디에 임대료와 매매가가 결정되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 한산한 거리가 믿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초대형 단지도 예외가 아니다. 2024년 11월 입주를 시작한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은 1만2천 세대, 배후 인구 3만명 이상을 갖췄지만 지하철 5·9호선 역세권 대형 상가에는 여전히 빈 점포가 즐비하다. 입주 1년 반이 지났음에도 상권 형성이 더디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5호선 인근 상가조차 1층 대부분을 부동산 중개업소가 채우고 있다. 현지 중개사는 "대로변 임대료가 3.3㎡당 7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지금은 50만원대, 입지가 떨어지면 30만원 중반까지 내려도 계약이 안 된다"며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종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상가 시장의 몰락은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2010년대만 해도 저금리 환경에서 대출을 끼고 매입하면 임차인이 금세 들어왔고, 시세 차익까지 누릴 수 있는 인기 투자처였다. 그러나 2016∼2017년 사드 갈등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끊기면서 주요 상권이 타격을 받았고, 코로나 팬데믹은 소비 패턴 자체를 뒤흔들었다.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되면서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19년 약 136조6천억원에서 지난해 약 275조원으로 6년 새 두 배 이상 폭증했다. 2022년부터 급격히 오른 기준금리와 경기 하강은 상가 투자자들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수익은커녕 원리금 상환조차 버거워진 이들이 속출하며 상가는 '투자자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를 보면 지난해 중대형 상가 공실은 전년 대비 13.8% 늘었고, 소규모 상가 8.1%, 집합 상가 10.4%도 각각 증가했다. 성수동·한남동·명동 등 일부 핫플레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가가 공실과 싸우고 있다.
가로수길의 경우 전성기에는 3.3㎡당 임대료 70만∼100만원, 매매가 3억원대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20만∼40만원으로 낮춰도 임차 문의가 뜸하다. 급격한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인기 점포들이 성수동·한남동 등 대안 상권으로 빠르게 이탈한 결과다.
신사동의 한 중개법인 관계자는 "온라인과 배달로 대체 불가능한 병원·미용실만 살아남는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며 "성수동도 연무장길 팝업 매장과 베이커리 등 특정 업종에 수요가 집중되고, 조금만 벗어나면 일반 음식점은 영업이 안 될 정도"라고 전했다.
동대문·종로 복합테마상가처럼 젊은 층 패션 소비를 이끌던 도심 상권도 온라인 쇼핑에 직격탄을 맞은 지 오래다. 수도권 2기 신도시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파주·김포·동탄 상가는 입주 후 수년이 흘렀는데도 공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알짜 입지로 꼽힌 위례신도시도 연말 트램 개통 호재에도 불구하고 10년째 빈 점포가 남아 있다.
남양주 다산·별내 신도시 일대에서는 건물 절반이 비었거나 1층 도로변에 '임대' 현수막이 즐비하다. 서울 도심 재건축·재개발 단지도 마찬가지다. 서초구 메이플자이(3천300가구)와 올림픽파크포레온은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공실이 적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단지 내 상가는 고정 배후 수요 덕에 안정적 수익원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임차인 구하기조차 어렵다"며 "빈 점포가 미관을 해치고 집값에 악영향을 줄까 봐 조합원들이 걱정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경매 시장에서도 상가 불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상업·업무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7만92건으로 전년(4만9천60건) 대비 43% 급증했다. 올해 4월에는 월간 8천252건을 기록하며 통계 작성 이래 최다를 경신했다. 자영업 폐업이 늘고 신규 창업은 줄면서 대출을 감당하지 못한 물건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부 재건축 조합은 아예 상가를 짓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으며, 정부도 상가 시장 구조조정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공실 장기화로 치안 우려와 도시 미관 저해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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