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금융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금융소비자와 투자자 편익 개선 효과를 둘러싸고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 접근성 확대와 비용 절감, 선택권 강화 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편의성 확대'라는 명분 아래 소비자 보호 장치가 약화되고 플랫폼·대형 금융사 중심의 시장 재편만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 특례가 실제 금융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절차 간소화가 아닌 소비자 보호와 시장 경쟁질서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9일 'MMW-CMA 간편 가입 서비스' 등 13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신규 지정했다. 이로써 누적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건수는 총 1072건으로 늘었다. 이번 지정안에는 비대면 투자상품 가입 절차 간소화, 외화투자 연계 서비스, 플랫폼 기반 제휴 예·적금 확대, 보험 판매 규제 완화 등이 포함됐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한국투자증권의 'MMW-CMA 간편 가입 서비스'는 기존 대면 또는 영상통화 방식으로만 가능했던 투자일임형 CMA 설명 의무를 애니메이션, 음성봇, 햅틱, 판매직원 연결 등 비대면 상호작용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금융위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 가입 소요 시간이 기존 30분 안팎에서 15분 내외로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편의성 제고가 소비자 보호장치 강화로 이어질 지 여부에 대해선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일임 계약은 원칙적으로 설명의무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금융상품이다. 그동안 대면 또는 영상통화 방식이 요구됐던 이유 역시 판매자와 소비자 간 충분한 상호작용을 통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를 애니메이션·음성봇 등으로 대체할 경우 형식적 설명 절차만 남고 실질적 이해 여부는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플랫폼 기반 금융상품 판매 확대 역시 소비자 편익과 별개로 플랫폼 종속에 대한 우려를 사고 있다. 11번가·신한은행, 롯데멤버스·전북은행, 삼성카드·우리은행 간 제휴 금융상품 서비스는 비금융 플랫폼 앱에서 예·적금 및 통장 개설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금융 접근성이 높아지고 예금자 보호 혜택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이 금융상품 유통채널로 자리 잡을수록 소비자는 '가장 좋은 상품'이 아니라 '플랫폼이 우선 노출하는 상품'을 접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 역시 이를 인식해 알고리즘 공정성 검증과 반기별 모집실적 보고 의무 등을 부가조건으로 달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감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보험 판매 규제 완화 역시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과 달리 판매 쏠림 현상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혁신금융서비스에는 카드사의 전화 보험 판매 시 특정 보험사 상품 판매 비중을 50% 이하로 제한하던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융위는 소비자 선택권 보장과 상품 다양성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규제는 본래 특정 보험사 밀어주기와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규제 완화 이후 판매 비중 상한이 75%까지 확대되면서 사실상 특정 보험사 상품 편중 판매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도 취지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지만 현실적으로는 판매 채널과 보험사 간 제휴 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화 선불전자지급수단을 증권계좌와 연계해 해외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 역시 투자 편의성과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되지만 동시에 투자 접근성을 과도하게 높여 초보 투자자의 무분별한 해외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투자자 보호 장치 역시 그에 비례해 강화돼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혁신금융서비스 제도 자체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규제 특례 중심 접근만으로는 금융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규제를 일시 완화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제도 도입 이후 실제 소비자 피해 여부와 시장 구조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사후평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혁신금융서비스 상당수가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보다 기존 금융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플랫폼 연계 범위를 넓히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실질적인 금융 혁신보다는 규제 우회 수단처럼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제도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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