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국이 가지고 있던 '세계의 공장' 타이틀이 베트남으로 서서히 옮겨가면서 베트남 권력층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의 '관시(關係·관계)'에 버금갈 정도로 '꽌헤(Quan he·관계)'를 중시하고 있어 핵심 권력층과의 네트워크가 베트남 시장 진출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들도 공산국가 특성상 타 국가에 비해 폐쇄성이 강하고 사회 전 분야에 있어 정치권 영향력이 막강한 만큼 베트남은 정치 권력자들의 '꽌헤(Quan he·관계)'가 형성돼 있어야 안정적인 사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형은 국가 주석, 동생은 재벌 회장…베트남 1등 로열패밀리 '또 가문'의 실체
베트남 정치권 등에 따르면 베트남 공산당의 서열은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 ▲레 밍 흥 총리 ▲쩐 타인 먼 국희의장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들 3인은 명실공히 베트남 정치권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최고 권력가들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 권력자인 럼 주석(1957년생)은 홍옌성 반장현에서 부친 또 꾸옌과 어머니 당 티 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또 꾸옌은 인민공안 대령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남부전선에서 활약했다. 당시 그는 또 럼이라는 가명으로 전장을 누볐으며 당시 썼던 가명을 훗날 태어난 장남의 이름으로 지었다. 전쟁 이후 전국 수용소 관리국장, 하이홍성 공안국장 들을 역임하며 여러 직책을 거쳤으며 사후인 2015년 베트남 국가 최고 영예 중 하나인 '인민무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 있는 베트남의 경우 최고위 지도층이라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한적인 편이다.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거나 유명인이 아니라면 대외적으로 공개된 정보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에 럼 주석의 어머니 당 티 캄에 대해서도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또 꾸옌과 당 티 캄 사이에는 총 6명의 자녀가 있다. 럼 주석은 이들 중 첫째다. 럼 주석의 형제들 중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은 남동생 또 중(Tô Dũng·1962년생)과 여동생 또 티 투 히엔(Tô Thị Thu Hiền·1963년생) 등이다. 특히 중 회장은 베트남에서 신재생 에너지, 물류, 부동산, 유통 등의 사업 등을 영위하는 쑤언꺼우 홀딩스의 창업주다. 지금도 회장 겸 이사희 의장을 맡고 있다.
쑤언꺼우 홀딩스는 '또 가문' 인물들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가족 기업이다. 지배구조는 ▲또 중 회장 61.76% ▲또 티 투 히엔(16.15%) ▲또 두이(11.1%) ▲또 호 뚜(7.77%)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티 투 히엔은 럼 주석의 여동생으로 2대 주주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평소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려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아 현지에서 '은둔형 리더'로 불린다. 또 두이(Tô Duy)와 또 호 뚜(Tô Hồ Thu)는 또 중 회장의 아들과 딸로 각각 1992년생, 1996년생이다. 중 회장은 지난 24일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기간 동안 배경훈 부총리,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등과 만나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 과학기술 협력 비전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중 회장의 아내 호 송 홍(Hồ Sông Hồng)은 꽝응아이 지역 출신의 유명 교육자인 호 코(Hồ Cơ)의 딸이다. 호 코는 베트남 교육부 산하의 거대 출판사인 교육출판사의 부국장 출신으로 베트남 전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기획·편집·인쇄 등을 담당했다. 호 코는 쩐득루옹 전 베트남 제 5대 국가 주석으로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중 회장의 장남인 또 두이는 현재 XCE 에너지 주식회사의 이사회 의장과 베트남 피클볼 연맹 설립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동시 역임하고 있다. XCE 에너지 주식회사는 쑤언꺼우 홀딩스의 신재생 에너지 부문 자회사다. 피클볼은 베트남 정부가 직접 육성하는 국민 스포츠로 정부는 2024년부터 전국 대회를 열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하노이 거주자들에 따르면 최근 현지 피클볼의 인기가 매우 높아져 시내 곳곳에 피클볼 코트가 대거 설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 회장의 장녀 또 호 뚜는 쑤언꺼우 홀딩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럼 주석은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총 4명의 자녀를 뒀다. 첫째 부인 응우옌 티 킴 론(Nguyễn Thị Kim Loan) 사이에서 아들 또 롱(Tô Long)과 딸 또 마이 리엔(Tô Mai Liên)을, 현 부인이자 둘째 부인인 응우 푸엉 리(Ngô Phương Ly) 사이에서 두 명의 딸을 낳았다. 첫째 부인인 응우옌 티 킴 론은 럼 주석과 같은 고향 태생으로 전직 회계사 출신이다. 베트남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녀는 럼 주석과 이혼한 후 무속인이 됐다. 장남 또 롱은 1982년생으로 베트남 공안부 산하의 최고급 경찰 간부 양성 기관인 인민안전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현재 공안부 산하 공공안전부 대외안보국 국장을 맡고 있다. 대외안보국은 공안부 내부에서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조직으로 외국과의 첩보전과 해외 반정부 세력을 추적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딸 마이 리엔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둘째 부인 응우 푸엉 리는 럼 주석보다 13살이나 어린 1970년생으로 하노이 연극영화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베트남 국영방송(VTV) 문화예술 총괄로 재직 중이다. 그녀의 집안은 베트남 문화예술계의 명문가다. 아버지는 인민예술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응우 마잉 런(Ngô Mạnh Lân), 어머니는 인민예술가이자 배우인 판 응옥 란(Phan Ngọc Lan)이다. 인민예술가는 베트남 정부가 문화예술 분야의 종사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의 명예 칭호로 한국의 인간문화재와 유사하다. 그녀의 언니인 응우 푸엉 란(Ngô Phương Lan)은 현지에서 유명한 영화 평론가로 현재 베트남 영화진흥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동생인 응우 득 럼(Ngô Đc Lâm)은 하노이 산업미술대 강사로 재직 중이다. 럼 주석은 둘째 부인과 슬하에 2명의 딸을 두고 있다. 장녀 또 하 린(Tô Hà Linh)은 영국 런던대학교 단과대학인 동양 아프리카 대학(SOAS)을 졸업했으며 VTV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장관 아버지, 정보국장 형님 둔 베트남 2인자…문화·외교 수장 아내 둔 권력서열 3위
베트남 국가 서열 2위인 레 밍 흥(Lê Minh Hưng) 총리는 1970년 하띤성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노이 국립대, 상하이 금융경제대학, 일본 사이타마 경제대학 등을 거친 금융 엘리트다. 2000년 베트남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2002년 베트남국립은행 국제협력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국제협력부 부국장·국장, 베트남국립은행 총재 보좌관, 부총재 등을 거쳐 2016년 베트남국립은행 총재에 임명됐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는 공산당 중앙 사무국장을 맡았으며 2024년부터 5월부터 현재까지 베트남 최고 권력 기구인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흥 총리는 베트남에서도 내로라하는 명문 가문의 일원이다. 그의 아버지 레 밍 흐엉(Lê Minh Hương)은 군인 출신으로 1965년부터 10년 넘게 일본주재 정보원(스파이)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공안부에서 각종 요직을 거친 뒤 1996년 공안부 장관에 올랐다. 공안부는 베트남에서 단순히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를 넘어 국가 권력의 핵심이자 모든 분야를 통제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기관이다. 럼 주석 역시 40년 이상 공안부에 몸담았으며 공안부 장관을 역임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럼 주석은 직접 흐엉 전 장관에게 인민무력영웅 칭호를 내리며 그의 공로를 기리기도 했다. 흥 총리의 어머니 팜 티 히엔(Phạm Thị Hiền)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흥 총리는 삼형제 중 막내다. 큰 형인 레 밍 훙(Lê Minh Hùng, 1963년생)은 베트남 공안부 출신으로 베트남 내에서 구금을 담당하는 구금·교정 및 형사 판결 집행 경찰국 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작은 형인 레 밍 하(Lê Minh Hà, 1967년생) 역시 공안부 출신으로 조직 내에서 미유럽아프리카정보국 부국장을 거쳐 현재 아시아정보국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정보국장은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경제·안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공안부를 지배하는 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중앙공안당위원회의 검사위원회 상임부위원장 직을 동시 역임중이다. 이 직책은 공안부 소속 수만 명의 경찰관과 고위 간부들의 비리를 감시하고 징계하는 자리다. 한편, 흥 총리의 아내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출신이나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자녀들 역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베트남 국가 서열 3위인 쩐 타 먼(Trần Thanh Mẫn·1962년생) 국회의장은 베트남 남부 경제 거점인 껀터(Cần Thơ)를 기반으로 성장한 베트남의 정치 지도자다. 1979년 청년연맹 활동을 시작으로 껀터시에서 다양한 요직을 거친 후 2008년 껀터시 시장에 선출됐다. 2017년에는 베트남 역사상 최연소로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이후 제13·14대 정치국 위원을 연이어 역임했다. 조국전선은 베트남 국민들이 모여 정부 정책을 감시하는 조직이다. 2024년 5월 브엉 딘 후에 전 의장의 사임 이후 제15대 국회의장직을 승계 받았다. 그는 탁월한 정무 감각과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이달 개막한 제16대 국회에서 다시 한번 만장일치로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먼 의장은 럼 주석과 흥 총리와 달리 평범한 농촌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와 형제와 관한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그의 아내 응우옌 티 탄 응아(Nguyễn Thị Thanh Nga) 여사는 남편을 도와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녀는 먼 의장과 함께 공식 석상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베트남의 문화·자선 외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녀는 아세안 커뮤니티 여성 그룹(AWCH)을 하노이에서 직접 접견하고 세네갈 아동 지원 센터를 방문해 후원과 봉사활동을 하는 등 국제적인 인도주의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베트남 현지 매체에 따르면 티 탄 응아 여사는 지난해 11월 20일 우원식 국회의장의 베트남 공식 방문 당시 우 의장의 부인 신경혜 씨와 별도의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당시 티타임에는 베트남의 유명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베트남은 공안 출신 엘리트들이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가문 차원의 비즈니스가 활발한 만큼 이곳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 지형의 변화를 읽는 안목이 필수적이다"며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고 지도층 가문의 인맥과 그들의 관심사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맞춤형 협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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