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전화번호 하나만 유출돼도 난리가 난다. 쿠팡, 통신사, 카드사 등 대형 플랫폼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질 때마다 사회는 들썩이고 기업은 여지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공공기관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숨기고 싶은 개인 사정이 아무렇지 않게 줄줄이 공개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땐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창구였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누리집 불편신고 게시판에는 민원인의 업체명과 개업일, 정책자금을 신청했다가 왜 탈락했는지, 채무 상환은 얼마나 됐는지, 신용 상태는 어떤지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담당자가 답변을 달며 민원인의 금융 사정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어쩌면 남들에게 결코 알리고 싶지 않았을 사정이다. ‘철저한 비밀을 보장할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무색했다.
취재 과정에서 수많은 게시글 사이, 유독 마음에 걸리는 글이 있었다. ‘다들 어려워서 연락한 거지 죄지은 사람 아닙니다. 더 갈 데 없어서 온 거니 여기서까지 소상공인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
폐업자 100만명 시대다. 폐업 위기, 대출 거절, 채무 부담에 시달리다 콜센터 연락조차 닿지 않아 마지막으로 두드린 문이 온라인 민원 창구였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남긴 민원인과 통화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분노도 놀람도 아니었다. 여러 번의 불편한 민원 응대 과정에 지쳐버린 목소리였다. 어쩌면 이들에게 기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진공은 지난해 개인정보보호 인증까지 받았다. 하지만 정작 소상공인의 절박한 사정이 낱낱이 공개되는 걸 막지 못했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
어렵다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법적 문제를 따지기 전에 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의 문제다. 그 사정을 들어주고, 도와주고, 지켜주지 못할망정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일만큼은 없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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