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지역의 전통적 협력 구도가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28일(현지시간) 국제 석유카르텔로부터의 이탈을 전격 선언한 UAE의 결정이 중동 정세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발표가 이뤄진 시점이 특히 이목을 끈다. 사우디 제다에서 아라비아 반도 6개국이 참여하는 걸프협력회의(GCC) 긴급 회담이 진행되던 바로 그 순간, 사전 조율 없이 탈퇴 방침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최한 사우디로서는 자국 영토에서 기습을 당한 격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워싱턴DC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크리스틴 디완 선임 연구원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를 "UAE의 독립 선언"으로 규정했다. 그는 수년간 사우디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카르텔 잔류를 선택해왔던 UAE가 더는 종속적 관계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표면적으로 UAE는 시장 안정을 위한 생산량 확대를 탈퇴 명분으로 제시했다. 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ADNOC)는 독자 노선을 천명하며, 전쟁 이전 일일 340만 배럴이던 생산 규모를 2027년까지 500만 배럴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 전략이 실현되면 사우디가 주도하는 감산 정책의 실효성은 크게 훼손되고,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UAE의 발언권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양국 간 노선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적 에너지 전환 흐름이 본격화되기 전 최대한 원유를 팔아야 한다는 UAE의 입장과, 공급 조절을 통한 고유가 기조 유지를 선호하는 사우디의 시각은 오랫동안 충돌해왔다.
이번 행보의 배경에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라는 전략적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이란 전쟁 국면에서 2천200여 차례가 넘는 미사일과 드론 위협에 직면한 UAE는 걸프 국가들에 공동 방어를 호소했으나 결국 실질적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안와르 가르가시 대통령 고문은 "이번 분쟁에서 GCC의 위상은 역사상 최저점을 기록했다"며 역내 국가들의 미온적 태도를 공개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역할이 군사 영역을 넘어 방위 시스템, 정치적 후원, 경제·재정 협력까지 포괄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고 역설했다.
경제적 지렛대를 활용한 UAE의 공세적 외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약 2천958조원에 달하는 국부펀드를 기반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UAE는 최근 이란과의 종전 중재에 나선 파키스탄으로부터 보유 외환의 5분의 1 규모인 35억 달러 예치금을 회수하는 강수를 뒀다. 이란 규탄 전선에 동참하지 않은 데 대한 외교적 압박으로 풀이된다. 사우디가 곧바로 파키스탄 지원 의사를 표명하면서 두 나라의 역내 주도권 다툼이 재점화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경쟁은 격화 일로다. 예멘과 수단 내전에서 상이한 진영을 후원해온 양국은 작년 12월 충돌의 정점을 찍었다. 사우디 군이 예멘 내 UAE산 무기 수송 차량을 타격하고 UAE를 안보 위협 세력으로 지목한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대립 구도에 뿌리 깊은 지역 감정과 자존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진단했다. GCC 최대 인구를 보유한 사우디가 스스로를 걸프의 '맏형'으로 인식하는 데 반해, UAE는 이러한 위계에 불쾌감을 표출해왔다는 것이다. 사우디 왕실 측 인사가 작년 UAE를 "반항적인 막내"로 칭해 양국 관계가 경색된 사례도 있다.
다만 UAE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갈등 프레임을 부인하고 있다. 수하일 알 마즈루이 에너지인프라부 장관은 "이번 결정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전시 상황에서도 사우디와 UAE는 형제 국가로서 연대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UAE가 아랍연맹, 이슬람협력기구(OIC) 등 역내 다자 협의체에서 추가 이탈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이란 전쟁 대응 과정에서 봉합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진 양국의 골이 향후 중동 질서 재편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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