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현장의 안전을 위해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산업재해예방사업’이 현장의 도덕적 해이와 허술한 관리 탓에 나랏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과 고용노동부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최근 4년간 추진한 산재예방사업 실태를 점검한 결과, 예방효과 미흡과 부정수급 등 총 2천47건의 위법·부적정 사항을 적발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점검 결과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장비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817억원을 들여 지원한 스마트 안전장비 중 60%가 안전 기능을 끄거나 방치된 채 사용돼 예방 효과가 전무했다. 실제로 한 현장에서는 알람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차량 충돌 예방장치나 인체 감지 시스템의 전원을 차단해 둔 사실이 적발됐다.
위험 설비 교체 사업 역시 신규 설비 확보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원받은 사업장의 77%가 새 설비를 들이고도 위험한 기존 노후 설비를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거나 타 사업장에 매각했다. 제조업체 A사의 경우 끼임 사고 예방을 위해 새 CNC 밀링기 3대를 지원받았으나 기존 밀링기 3대를 처분하지 않아 현장에 총 6대의 기계가 가동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또 단 1대의 설비 교체가 필요한 업체가 무려 5대의 신규 설비를 신청해 4대를 초과 지원받은 사례도 확인됐다.
보조금을 노린 악의적인 부정수급 사례도 81건이나 적발됐다. B사업장은 2천만원짜리 산업용 로봇청소기를 구입하면서 판매 업체와 짜고 세금계산서를 3천7백만원으로 위조해 공단에 청구했다. 이들은 부풀려 받은 정부 보조금 중 일부를 대납 업체를 거쳐 현금으로 돌려받는 수법(페이백)을 썼다.
건설업계에서는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만 지급되는 안전시설 비용을 타내기 위한 꼼수가 난무했다. 59억원 규모의 신축 공사 계약을 49억원으로 축소 신고하거나 38억원짜리 단일 공사를 19억원짜리 두 개로 쪼개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수법으로 부당하게 지원금을 챙긴 건수가 571건(35억원)에 달했다. 안전 컨설팅 역시 사망 사고가 잦은 지붕 개보수 등 고위험 현장(18.3%)은 외면한 채 접근이 쉬운 도심지 인테리어 현장(64.5%)에만 집중돼 전형적인 ‘실적 채우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적발된 부정수급 금액을 전액 환수하고 관련 업체들을 수사 의뢰하는 한편 지원 체계의 근본적인 수술에 돌입한다.
우선 안전장비 부정수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품목별 상한액 기준을 마련해 내년 1월부터 적용한다. 위험 설비 교체를 지원받을 때는 반드시 기존 노후 설비를 폐기하도록 ‘1대 1(폐기 대 신규)’ 조건을 명문화해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위험 요인을 제거할 방침이다. 아울러 건설업계의 ‘공사 쪼개기’ 꼼수를 막기 위해 지원금 산정 시 산재보험 신고액이 아닌 실제 도급계약서와 건설공사대장 확인을 의무화한다.
안전 컨설팅은 고위험 작업 유형에 최소 40% 이상 집중되도록 지침을 개정해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폐업한 사업장의 보조금을 신속히 환수하지 못했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세청 공공데이터와 실시간으로 연계해 폐업 사실을 즉각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도 내년 3월부터 가동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점검을 통해 드러난 미비점을 조속히 보완해 산재예방 예산이 서류 위조나 꼼수에 낭비되지 않고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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