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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겼던 부타디엔·자일렌도 4~6년만에 中서 수입 재개
29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일본 재무성의 3월 무역통계 확정치와 중국 해관총서가 이달 중순 발표한 3월 무역통계 품목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식품·세제용 병, 비닐봉지 등에 쓰이는 고밀도 폴리에틸렌의 지난달 중국산 수입량은 전년 동월 대비 2.7배 증가했다. 2025년 월평균과 비교해도 20% 많은 물량이다.
식품 트레이와 가전 부품에 사용되는 폴리스티렌은 76% 늘었고, 자동차 부품용 폴리프로필렌도 26% 증가했다. 주요 플라스틱 원료 전체로는 27% 증가하는 등 일본의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 수입은 핵심 품목 전반에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중동 위기를 계기로 중국에서 수입을 재개한 석유화학 제품도 있다. 타이어 원료가 되는 기초유분 부타디엔은 2021년을 마지막으로 중국에서의 수입 실적이 없었으나, 지난달 한 달간 197만kg을 들여왔다. 부타디엔은 기초유분 중에서도 대체 조달이 어려운 품목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시너의 주재료인 혼합 자일렌은 3월 중국 무역통계에서 6년 반 만에 일본 수출 실적이 확인됐다. 자일렌은 일본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군민 양용(이중용도) 품목에 해당한다”며 중국 통관회사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발했던 품목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와 연줄이 닿아 있는 현지 대리점을 통해 일본 화학 대기업들이 조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시너는 건설·자동차용 도료의 희석액으로 쓰이는데, 용도별로 여러 화학품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재료가 하나라도 빠지면 제조가 어려워 일본페인트 등은 일부 제품에서 출하 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기초유분은 나프타를 열분해해 생성된다. 이들 기초유분이 화학반응을 거쳐 폴리에틸렌이나 염화비닐 수지 등 중간재가 되고, 다시 식품 포장재, 자동차, 가전 등 폭넓은 최종 제품에 쓰인다. 그런데 일본은 나프타 수요의 80% 이상을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지금 조달길이 막혀 있다.
일본 내 에틸렌 생산 설비 대부분은 감산에 들어간 상태로 공급망 유지를 위해 최저 수준의 가동만 이어가고 있다. 이에 폴리에틸렌 등 자국산 중간재 가격이 잇따라 오르고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으로 수요가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 “석탄·가스 풀가동”…중국은 공급 여력 충분
일본과 달리 중국의 석유화학 공급 체제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원유 조달처 자체가 다양해 중동 일변도인 일본과는 다르다. 또 일본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제조 방식이 대부분인 반면, 중국에는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에탄이나 석탄을 원료로 하는 제조 거점도 갖춰져 있다. 최근에는 자국에서 풍부하게 산출되는 석탄을 활용한 석탄화학 시설도 풀가동하고 있다.
중국 국유 최대 석탄기업 중국선화에너지는 폴리에틸렌의 지난달 판매량을 전년 동월 대비 10% 늘렸다. 중국 에너지 대기업 중국석유화공(시노펙)의 자오둥 부동사장은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그룹 내) 석탄화학 기업은 풀가동 중이며 대규모 정비도 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품귀를 빚고 있는 시너도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재고가 충분한 모습이다. 인터넷 통판 대기업 징둥(JD닷컴) 앱에서 검색하면 익일 배송 가능 상품이 줄지어 표시된다. 담당자는 “품귀 상태가 아니며 가격도 별다른 변동이 없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수요가 빠듯한 일부 연료와 석유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제한이 없는 품목은 중국 기업들이 이익을 노리고 적극 수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대형 종합상사 관계자는 “중동발 공급 불안을 메우는 형태로 중국산 수입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내수 부진으로 저가 석유화학 제품 수출이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이번 중동 위기를 계기로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일본 기업들의 수입이 한층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 ‘석유화학 한파’ 우려…“中에 시장 내준다” 위기감 고조
당장의 대체 조달은 응급조치 성격이 강하지만 현재의 흐름이 상시화하면 일본 석유화학 제조업계 입장에선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일본 화학 대기업의 한 임원은 “중국 측에서 중간재를 중심으로 공급망 안으로 파고들면서 쐐기를 박으려 하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일본 화학 대기업들은 내수 축소에 맞춰 생산 거점 통폐합을 진행해왔는데, 중국산 수입품이 부상하면 추가 축소가 불가피해질 것이란 우려다.
이미 철강 업계에서 중국산 위협에 노출된 전례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제조업체들의 과잉 생산이 이어지면서 내수로 소화하지 못한 값싼 강재가 해외로 풀려 전 세계 시장상황을 악화시켰다.
당시 일본 기업들 역시 생산 재편에 내몰렸다. 일본제철은 국내 15기였던 고로(용광로)를 10기까지 줄였고, JFE홀딩스도 2023년 가와사키시의 고로 1기를 가동 중단한 데 이어 2027년도에는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의 고로 1기를 추가로 멈춰 세울 계획이다. 중국산 유입이 계속되면 석유화학 제품 역시 철강과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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