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일본이 무기 수출을 풀었다.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다. 수출허용을 계기로 일본이 공동개발과 생산·공급에 참여하는 ‘방산 공급망’에 들어서면서, 방산시장 구조 변화가 예고된다. K방산에도 역할 재정립 요구가 커지고 있다.
◇ 살상 무기 풀었지만…수출은 ‘동맹국 한정’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1일 각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운용지침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전투기·미사일·함정 등 살상 무기를 포함한 완제품과 부품, 기술까지 수출이 가능해졌다.
대신 ‘전면 개방’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은 수출 대상을 미국·영국·호주·인도·필리핀 등 방위협력 협정국 중심으로 제한했다. 전투 중인 국가에는 원칙적으로 수출이 금지되며, 필요 시 예외를 두는 구조다. 또한 살상 무기 수출은 총리 직속 NSC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해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등 관련 연구기관들은 민간 기업의 자유로운 수출 확대라기보다 동맹을 전제로 한 관리형 공급 모델로 해석한다. 즉 일본은 무기를 많이 파는 국가가 되기보다, 미국과 서방이 구성하는 공급망 안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을 택했다는 의미다.
◇ 일본은 부품·기술, 한국은 패키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처럼 ‘완제품 수출 강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일본 방산기업들은 대부분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등 대기업 내 사업부 형태로 운영되며, 전체 매출에서 방산 비중이 크지 않다. 산업 전체에서 방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1% 안팎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생산 방식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전차·함정·항공기 등을 소량 생산하는 구조로, 가격을 낮추거나 납기를 단축하는 경험이 제한적이다. 실제로 과거 인도와의 항공기·수상기 수출 협상에서도 높은 단가와 생산 능력이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일본이 단기간에 대량 패키지를 빠르게 공급하는 ‘완제품 수출 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센서, 전자장비, 미사일 기술, 핵심 부품 등에서 강점을 살려 공동개발과 공급망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센터장은 “일본의 영향은 단기적으로 전 분야에 확산되기보다는 일부 영역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함정 분야와 동남아 시장에서는 일본의 기술력과 기존 신뢰도를 바탕으로 경쟁 강도가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 18일, 총 11척을 도입하는 약 20조원 규모의 호주 해군 차세대 호위함 사업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제안한 모가미급 호위함이 최종 선정됐다. 일본이 지난 2014년 방산 수출 규제를 조건부 허용으로 바꾼 후 거둔 최대 실적이다. 이 사업에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고배를 마셨다. 이는 함정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동남아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한국이 완제품 수출을 확대하는 가운데, 일본은 해양경비함 지원과 함께 레이더·감시체계 등 해양안보 분야 기술 협력을 앞세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차이는 향후 수주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신 K방산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수출 기반을 확보한 상태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약 170억달러 규모의 방산 수출을 기록한 이후, 2023~2025년에도 150억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기준 국내 주요 방산기업 수주잔고는 10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중장기 공급 기반도 확보된 상태다. 폴란드, 중동·동남아 등 주요 시장에서의 대형 계약이 이를 견인했다.
◇ 방산, ‘공급망 산업’으로 변화
일본의 이번 수출 허용은 글로벌 방산시장의 더 큰 흐름과 맞물려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이 동맹국과의 공동 생산 및 공급망 분산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경제안전보장’ 정책 아래 방산과 핵심 부품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며, 동아시아 공급망에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수출허용은 이러한 전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유 센터장도 “일본은 단독 수출보다 미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생산과 공급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장비를 일본에서 생산하거나 공동개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내 비중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방위산업을 “동맹과 기술·경제안보를 연결하는 공급망 인프라”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완제품을 수출하는 산업이 아니라, 동맹 간 역할 분담 속에서 작동하는 체계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이 기준에서 보면 일본은 ‘공동개발·부품공급’ 중심으로, 한국은 ‘완제품·패키지 공급’ 중심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향후에는 이 경계가 점점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 관련 업계도 공급망 리스크 대응을 위해 핵심 부품 국산화와 해외 생산 거점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단순 수출 확대가 아니라 공급망 안에서 역할을 넓히는 전략과 연결된다.
일본의 무기 수출허용을 단순 경쟁 구도로 보는 해석은 제한적이다. 국내외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변화는 “새로운 경쟁자 등장”보다 “게임의 룰 변화”에 가깝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형 공급망이 강화되면서, 각국이 맡는 역할이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K방산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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