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충격이 원유 시장을 넘어 세계 경제의 물가 구조를 다시 흔들고 있다. 세계은행은 28일(현지시간) 발표한 ‘Commodity Markets Outlook’에서 올해 에너지 가격이 전년 대비 24% 급등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원자재 가격도 에너지와 비료, 주요 금속 가격 상승에 밀려 올해 16% 오를 것으로 봤다. 이번 충격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에너지에서 식량, 물가, 금리, 부채로 이어지는 복합 위기라는 평가다.
충격의 출발점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은행은 에너지 기반시설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로 세계 원유 공급이 하루 약 1000만 배럴 줄었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약 35%가 지나는 길목이다. 브렌트유 가격은 최근 고점에서 다소 내려왔지만, 4월 중순 기준으로도 연초보다 50%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세계은행은 브렌트유가 올해 배럴당 평균 8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평균 69달러에서 크게 뛴 수치다.
문제는 전쟁의 충격이 원유 시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은 비료 가격이 올해 31% 오를 것으로 봤다. 특히 요소 가격은 60%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료 가격이 오르면 농가의 생산비가 높아지고, 이는 다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세계식량계획은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최대 4500만명이 추가로 급성 식량 불안에 빠질 수 있다고 봤다. 에너지 위기가 식탁의 위기로 전이되는 구조다.
금속 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알루미늄, 구리, 주석 등 기초금속 가격은 데이터센터, 전기차, 재생에너지 산업 수요와 맞물려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귀금속 가격 역시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안전자산 수요로 올해 평균 4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쟁이 에너지 가격만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AI 인프라와 전력망, 친환경 산업의 원가까지 동시에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은행은 이번 충격이 개발도상국에 더 무겁게 작용할 것으로 봤다. 개발도상국의 올해 평균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5.1%로, 전쟁 전 예상보다 1%포인트 높아졌다. 성장률 전망은 3.6%로 1월 전망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원자재 수입국의 70%, 원자재 수출국의 60% 이상이 기존 전망보다 낮은 성장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쟁이 더 길어질 경우 충격은 훨씬 커진다. 세계은행은 주요 석유·가스 시설 피해가 확대되고 수출 회복이 지연되는 악화 시나리오에서 브렌트유가 올해 평균 배럴당 11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개발도상국 물가상승률은 5.8%까지 높아질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이보다 높은 물가 수준은 2022년 한 차례뿐이었다.
인더밋 길(Indermit Gill)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은 세계 경제를 누적 파동으로 때리고 있다”며 “에너지에서 식량, 인플레이션과 금리, 부채 부담으로 이어지는 충격이 순차적으로 확산된다”고 했다. 이어 “결국 가장 취약한 계층과 국가가 먼저 무너진다”며 “전쟁은 곧 개발을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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