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여파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각국 정부가 세금 인하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 시간),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에너지 관련 세금을 낮춘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39개국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불과 한 달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유럽의 대응이 두드러진다. 전체 39개국 중 19개국이 유럽 국가로, 에너지 비용 급등에 따른 국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가스 운송이 사실상 차질을 빚으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이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 영향이다.
유럽 각국은 대규모 재정 투입에도 나섰다.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브뤼겔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95억 유로(약 16조 원 규모)가 에너지 비용 완화를 위한 정책에 투입됐다. 이 중 80% 이상은 유류세나 부가가치세(VAT) 인하처럼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조치였다.
주요 사례를 보면 독일은 약 16억 유로를 들여 연료세를 낮췄고, 스페인은 35억 유로 규모의 에너지 부가세 인하 정책을 시행했다. 이탈리아 역시 유류 소비세 20% 인하 조치를 연장하며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세금 인하와 함께 연료 가격 상한제까지 도입해 시장 가격 상승을 직접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을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규모 재정 지출이 누적되면서 각국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많은 국가가 높은 부채 수준에 직면해 있다며, 재정 정책의 신중한 운용과 ‘선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브뤼겔의 연구진은 광범위한 세금 감면과 가격 통제가 오히려 에너지 수요 절감이나 친환경 전환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도입한 국가가 3곳에 불과한 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9개국이 관련 정책을 시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단기적인 물가 안정과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 사이에서 각국의 정책 균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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