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복, 강순복, 김광연, 김금실, 김남협, 김병철, 김재형, 김지현, 뢰려연, 박영화
별려매, 엄정정, 이미란, 이준봉, 이해옥, 이향단, 주이, 채춘효, 최은미선, 최은화
OOO, OOO, OOO(3명은 익명)
아리셀 참사 희생자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영정을 유족들이 하나하나 바닥에 세웠다. 처음에는 한 줄로 세우려 했지만, 이내 영정이 너무 많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유족들은 영정을 다시 두 줄로 배치했다. 틈새로라도 뒷줄에 놓인 영정이 보일 수 있도록 간격을 뒀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대재해 참사가 일어난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에 대해, 1심형에서 11년을 낮춰 징역 4년을 선고한 2심 재판부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기자간담회를 시작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가 28일 서울 서대문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연 이번 간담회에서 유족을 대리한 변호인들은 2심 재판부가 비상구 설치·유지 의무 등에 무죄 판결을 내리고, 피해자와의 합의를 대폭 감형 이유로 삼은 점을 비판했다. 유족들도 2심 판결을 보며 느낀 아픔을 눈물과 함께 토로했다.
'비상구 설치 의무', '안전업무 평가 기준 마련 의무'에 무죄 선고한 2심
변호인들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산안법상 위험물질 작업장에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하고 유지할 의무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관리할 의무 등 위반에 대해 박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비상구 설치·유지 의무'와 관련 2심 재판부는 리튬 1차전지를 산안법상 위험물질로 인정하지 않아 '사측이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유지 의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즉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3동 2층의 비상구 두 곳의 문을 나가는 방향 반대로 열리게 설치하고,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게 보안장치를 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손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원이 안전불감증을 조장한 셈"이라며 대형 연쇄 폭발 가능성이 있는 리튬 1차전지를 위험물질로 보지 않은 것은 잘못된 법리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2심 재판부는 또 '안전보건 업무 평가 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손 변호사는 "아리셀 경영책임자인 박순관 대표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박중언 경영본부장에 대해 해당 의무를 이행했다면, 박 본부장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반박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합의가 감형사유? 가중처벌 사유 돼야"
2심 재판부는 그러나 열감지기 설치 의무, 안전보건교육의무, 위험성 평가 의무 등 6개 산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1심 재판부와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와의 합의를 주요 감형 사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신하나 변호사는 "1심 선고 시점에도 이미 사측과 다수 유족이 합의했다"며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지하면서도 6가지 핵심 안전보건 의무 전면 위반,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의를 제한적 양형사유로만 반영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2심 판결문에는 '합의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함'이라고 적혀 있다"며 "그렇다면 합의가 피해를 충분히 회복시켰나 심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정작 이에 대한 심리 요청을 거부했다"고 꼬집었다.
신 변호사는 또 아리셀 사측이 대리인을 통해 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라오스인에게 중국어로 연락하고, 자식이 없는데 학비를 대주겠다고 하고, 스토킹법 위반이라 생각될 정도로 연락하는 등 일이 너무 많았다"며 "저는 이건 2차 가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 사건에서 "가족이 죽었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용서가 되겠나"라며 "피해자와의 합의를 감형 사유로 삼을 게 아니라, 합의하지 않은 것을 가중처벌 사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3명 죽었는데 11년 감형'…2심 판결 본 유족들의 마음
유족들은 2심 판결을 보며 느낀 절망적 심경을 털어놨다.
고 김병철 씨 아내 최현주 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숯덩이가 돼 돌아왔다"며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살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참사 이후 방황하고 있는 자녀가 있다며 "사고보다 그게 더 무서웠다. 치료와 설득의 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있나"라고 했다.
최 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편한테 좀 더 잘해 줄 걸', '내가 왜 그때 그렇게 밖에 못했나' 그 미안함과 고마움은 정말 늪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며 "또 다시 늪에 빠진 기분이다. 내가 왜 합의를 했을까"라고 말했다.
고 엄정정 씨 어머니 이순희 씨는 딸은 "23살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다"며 "(그동안 부모님이) '뒷받침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가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기를 쓰고 일을 하다" 참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674일이 지났는데도 너무 억울하다. 재판장은 가족도 없는 분인가"라며 "돈이 없고 권력 없는 사람은 다 죽어도 마땅하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2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고 여북화 씨 사촌언니 이해옥 씨는 아리셀 참사 희생자 중 "사지가 온전하지 못한 가족이 너무 많다. 머리와 몸통만 남은 가족도 있고, 한쪽 팔 다리가 다 없는 가족도 있고, 양쪽 팔꿈치와 무릎 아래가 없는 가족도 많다"며 "사체도 온전하게 보내지 못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누가 알겠나"라고 했다.
이어 "마냥 슬퍼만 할 수도 없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며 사고현장에 남은 유해 수습, 추모공간 조성, 책임자 엄벌 등 바람을 밝힌 뒤 "연대해주셨던 분들 끝까지 곁에 남아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아리셀 참사 2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박 대표 감형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다음달 11일 전체회의를 열고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등을 검토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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