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20번이 넘는 면접을 본 끝에 드디어 고정적인 업무 스케줄을 확정했다. 고정 지출을 감당하고 한 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원서를 쓰고 면접장에 가기를 반복하며 상반기의 몇 달을 보냈다. 여행 중에 면접 연락을 받아 급히 기차표를 바꾼 날도 있었고, 서로 다른 분야의 면접 세 군데를 하루 만에 해치운 날도 있었다. 카페, 아동 미술, 옷가게 등을 지원하며 내 재주가 이렇게 많았나 싶다가도, 막상 경력으로 내세울 건 참 없다는 상충되는 생각에 휩싸이곤 했다. 가장 묘했던 지점은 내 본업과 작업들이 여러 일터들에선 전혀 경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여러 버전의 포트폴리오와 이력서가 컴퓨터 배경화면에 쌓이고 있다.
면접관들은 늘 내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으로 시작해 “이런 이유로 이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로 끝나는 자기소개를 반복했다. 처음엔 진심을 다했지만, 나중에는 별다른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면접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면접자는 나를 금방이라도 채용할 듯 달콤한 말을 건네다가도 다음 날이면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고, 또 나 자신을 다독이며 반복되는 날들을 보냈다. 문득 새벽에 깨어 홀린 듯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아무 일에나 지원해버리던 밤들도 있었다. 반복된 지원과 면접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동시에 지원해보는 일터까지의 거리는 멀어졌다. 작년 말 시작된 구직 활동은 4월이 되어서야 정착지에 닿았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지만, 계속되는 위기감을 스릴로 견뎌내야 했던 꽤 긴박한 상반기였다.
면접을 보러 다니며 대중교통의 고단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평소 경기도 내에서 이동할 땐 겪지 않던 지옥철과 만원 버스를 마주하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 그저 휴대폰에 눈을 바짝 붙일 뿐이었다. 아침 출근길, 서울로 진입할수록 좋은 향기를 풍기는 무표정한 사람들이 합류했다. 근사한 향기가 진동했지만 다들 저녁처럼 피곤해 보였다. 퇴근길에는 무너진 화장과 날씨에 맞지 않는 얇은 옷차림으로 잠에 절어버린 누군가를 보며 그의 삶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나는 저 지독한 삶의 궤도 밖에서 관찰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오만한 생각이 스칠 때쯤, 벌이라도 받듯 누군가에게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
고정 수입에만 의존하며 살다 보니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바라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타인의 인생을 책임질 순 없지만, 정규직이 아닌 삶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저금이나 택배 상자를 뜯는 재미는 덜할지 몰라도, 조금만 마음을 열면 소풍 가기 좋은 날씨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온도’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가로등 없는 산책길을 즐기고, 실수로 부딪친 사람에게 여유 있게 미안하다 말할 수 있는 마음. 이런 것들은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많은 사람에게 더 자주 찾아오는 가능성이다.
경기 북부에서 잠실까지 출퇴근하던 해와 늘 앉아 이동하는 3호선 끝자락의 삶이라는 정반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일종의 ‘생체 실험’을 마쳤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사람은 더 많은 날을 쉬어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통장 잔고와는 무관한, 삶의 질에 관한 이야기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