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임규리 인턴기자】임금노동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 10명 중 7명(69%)이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성소수자 노동권 보호를 위한 공론화의 장이 국회에서 열렸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이하 다움)과 이주희·손솔·신장식·한창민 국회의원, 친구사이 RUN/OUT은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성소수자 노동실태조사 결과 발표 국회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다움에 따르면 노동은 생존과 자아실현을 위한 기본권이자 시민이 사회에 참여하는 핵심 통로지만 성소수자는 중첩된 차별에 노출돼 있다. 이같은 차별은 개인의 경제적·정신적 위기를 넘어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지만 그 실태를 증명할 기초 통계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2026 성소수자 노동실태조사를 맡은 다움 정성조 책임연구원은 이날 발제자로 나서 “보이지 않는 노동 시장 내 장벽들을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며 2639명을 대상으로 한 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성 정체성이 구직에 문제를 일으킨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9%가 ‘그렇다’고 답했다. 면접 시 거짓 답변을 하거나 성소수자 관련 활동 이력을 숨기는 식이다. 외모 표현이 자유로운 직장을 찾는 등 정체성으로 인해 구직 시 고려할 사항이 늘어나고 있다는 응답도 나왔다.
또한 응답자 19%는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을 경험한 적 있다고 증언했다. 괴롭힘 유형 중에는 언어적 괴롭힘이 14%로 가장 높았으며 커밍아웃하지 않았음에도 언어적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는 응답도 23%에 달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70%는 차별에 직접 대응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이는 가족·친구·지인과의 관련 이슈 대화를 회피하는 등 사회적 위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차별과 고립은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전체의 53.8%가 주관적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응답했으며 트랜스 남성과 논바이너리(Non-binary)의 경우 각각 25%, 33%가 최근 1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한 적 있다고 답해 자살 위험 노출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정 연구원은 “한국은 성소수자 노동자를 위한 법과 제도적 공백이 크다”며 “고용 영역 내 성소수자 차별 금지와 포용 정책이 마련되는 국제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국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직장 내 차별적 괴롭힘 방지 제도화를 촉구했다. 이어 기업에는 포용성 강화와 자유로운 성별 표현 보장과 평등한 복리후생 보장을, 정부에는 제도 보완과 인권 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예시로 영국이 2018년 대규모 실태조사 및 국가 LGBT(성소수자) 실행계획을 제시한 데 이어 일본은 아웃팅을 직장 내 괴롭힘을 대표 사례로 명시했다. 미국은 2020년 연방대법원이 고용차별금지법 보호 대상에 성소수자를 포함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2년 성소수자 포용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를 제시한 바 있다.
실태조사가 드러낸 차별의 현실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진단도 이어졌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이호림 공동대표는 일터에서의 배제와 차별이 성소수자 개인과 사회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소수자 개인은 소수자 지위로 인해 낙인이 찍히며 특유·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경제학자 리 배짓의 ‘차별 비용’ 개념을 들어 성소수자 차별이 교육·건강·고용 등 사회 전방위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조직 내 생산성을 악화시킨다고 짚었다.
실제로 영국 기업 협력 단체 오픈 포 비즈니스(Open for Business)에 따르면 성소수자 포용성 상위 25% 도시는 하위 25% 도시에 비해 혁신 점수는 2배, 기업가 정신 점수는 2.5배, 인적 자원 성과는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성소수자 노동 실태를 개선할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국회·정부·기업·노동조합·성소수자 인권 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서 해외 모범 사례 발굴까지 다층적·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엔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강한솔 연구원은 “기업에는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고 포용을 경영에 내재화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그는 유엔이 1994년 인권위원회 결정부터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 결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까지 기업에 성소수자 차별 해소와 포용적 문화 조성 역할을 부여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강 연구원은 “규제 강화만으로는 형식에 머무를 수 있다”며 “성소수자 포용을 조직 운영 전반에 내재화해야 할 인권 리스크 관리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동성 배우자를 복지제도에 포함하고 성별 전환 관련 의료서비스 및 병가를 지원하며 포용적 언어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구성원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토론에 참석한 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관계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 받아온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며 치명적인 건강권 침해 현황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관계자는 성소수자 권리 보호를 위해 2024년 발표된 UN 총회 보고서를 예로 들며 최고 경영진 수준의 공개 선언, 성인지적 인권실사 이행,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부서 강화가 기업의 의무로 보장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로는 자발적 점검, 가이드라인 제정 및 지속적인 실태조사, 고용노동부에 채용 차별 방지 확인과 권고, 차별금지법 입법 조력 등을 꼽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정책실 윤열 차장은 “그간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대안 마련은 그간 추상적으로 다뤄져왔다”고 지적하며 “민주노총이 올해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성소수자의 노동권도 삶의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근로기준법 제6조는 노동자에 대한 균등한 처우를 규정하고 있으나 차별 금지 조건을 성별·국적·신앙·사회적 신분으로 한정하고 있다. 윤 차장은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서도 성소수자는 범위 바깥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윤 차장은 “민주노총은 ILO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에 관한 협약’ 비준과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정신적 스트레스 관리 등 구체적 개선안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이 논의와 행동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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