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 수사 및 규제를 둘러싸고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기업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며 파장이 일고 있다.
한 나라의 사법 시스템을 '탄압'이라고 규정한 것인 만큼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들은 즉각 미 정부에 항의 서한을 발송하며 단체 행동에 나섰다.
미 정치권의 이번 움직임은 쿠팡의 로비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의 미국 모회사 쿠팡Inc는 올해 1분기에만 미국 정관계를 상대로 100만달러 이상의 로비 자금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소비자에게 번 돈을 로비자금에 사용한 것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검토 중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쿠팡 사태를 빌미로 한미 외교안보 고위급 협의가 어렵다는 입장까지 전달하는 등 국익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美공화당 의원 54명 "韓, 쿠팡 등 美기업 탄압 중단하라"
지난 22일 미국 공화당 공화당 연구위원회(RSC) 소속 하원의원 54명이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한국 정부에 발송했다.
이들은 21일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아 차별적인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 국내 경쟁사들은 보호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면서 미국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조치가 향후 10년간 한미 경제에 합산 1조달러의 피해를 줄 것이며, 미국 경제에는 5250억 달러의 손실을 입힌다는 싱크탱크 컴피티어의 연구 결과를 거론하기도 했다.
특히,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전방위적 탄압"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2025년 11월 발생한 저민감한 데이터 유출 사건을 빌미로 쿠팡에 대해 사업 면허 취소 위협, 서울 사무소 무차별 압수수색, 과중한 신규 규제, 징벌적 과징금, 전례 없는 세무조사, 국민연금의 쿠팡 주식 매각 압박 등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미국 기업을 밀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 공백을 테무·알리바바·쉬인 같은 중국 플랫폼이 채우게 될 것"이라며 "이들 기업은 중국공산당의 지배를 받고 있어 역내 지배력 확대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한 공동 주도자인 대럴 아이사(캘리포니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를 '친중 좌파'로 규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사 의원은 2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공격"하고 중국계 기업에는 특혜를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지만 지난 선거에서 중국과 노선을 같이하는 좌파 정부가 들어섰고, 새 정부는 메타 같은 대형 기업은 물론 '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쿠팡 등 미국 기업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은 유럽식 디지털 규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확산한 우수 기업들을 받아들이기보다 시장을 자국화하려는 성격이 강하다"고도 했다.
아이사 의원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4일 방미 일정 중 면담한 인물이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쿠팡 관련 논의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동혁 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쿠팡사태를 비롯한 이재명 정권의 반미·반기업 정책들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미국은 무역법 301조 조사까지 강행하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쿠팡Inc, 1분기 美 로비자금 109만달러…백악관·부통령도 대상
이처럼 미 정치권이 쿠팡 사태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쿠팡의 전방위 로비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쿠팡의 미국 모회사 쿠팡Inc는 올해 1분기 미국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 자금으로 109만 달러(약 16억원)를 지출했다고 신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비 대상은 미국 상·하원을 비롯해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 농무부, 중소기업청 등이다. 특히 미국 부통령과 백악관 대통령 비서실(EOP)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월 백악관에서 김민석 총리를 만나 쿠팡 관련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 내 상황을 질의한 바 있다. 당시 밴스 부통령은 해당 사안이 양국 간 오해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미 하원 공동행동을 주도한 아이사 의원도 지난해 쿠팡의 정치활동위원회로부터 5000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與의원 80여명 '美 쿠팡 항의서한'에 연명서한 맞불
우원식 의장 "쿠팡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예의를 갖추라"
미국 정부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수사 등을 두고 우리 정부에 항의한 데 대해 범여권 의원 83명은 27일 '미국의 사법주권 침해 항의서한 연명 요청'이라는 공지를 미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공지에는 "최근 미국 정부가 쿠팡 총수 김범석의 신변 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고위급 협의를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전달했다"며 "이는 개별 기업인의 사법 리스크를 국가 간 협상과 결부시킨 전례 없는 사례로 명백한 사법주권 침해"라는 내용이 적혔다.
또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쿠팡 등에 대한 차별적 규제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점도 문제 삼았다.
의원들은 "단순한 외교 갈등이나 주권침해 논란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노동권과 공정경제 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연명은 원내부대표인 박 의원과 김 의원을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오는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같은날 오전 미국 대사관에 해당 서한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미국 의원들의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우 의장은 지난 2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미 공화당 의원들의 서한을 두고 "명백한 내정간섭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직격했다.
이어 "(쿠팡은) 대규모 정보유출도 있고 알고리즘 조작 의혹도 있다"며 "만약에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그런 것(정보 유출, 알고리즘 조작)을 했으면 미국에서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을 갖고 의원들이 한국 대사에게 미국 기업들에 대한 편파적 조치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법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우 의장은 쿠팡을 겨냥해 "대한민국에 와서 기업을 하고 돈을 벌면 법률을 지키고, 이행하고, 정부의 조치에 따라야 할 것 아니냐"며 "한국에서 돈은 마음대로 벌고 싶고, 한국의 국민 정서는 무시하고 싶다는 것 아니냐. 쿠팡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직격했다.
美 "김범석 안전 보장안되면 안보 협의 어려워"
위성락 "쿠팡 문제, '한·미 안보협의' 지연에 영향"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2021년 쿠팡을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한 이후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비롯해 사고 대응 과정에서 보인 무책임한 행태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진 상황이다.
공정위에 의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과 배우자, 4촌 이내 친인척 등에 대한 광범위한 공시, 자료 제출 등 의무가 부과된다. 위반 때는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문제는 미 정치권의 쿠팡 사태에 대한 인식이 한미 동맹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1일 미국은 한국 정부에 김범석 쿠팡아이엔씨 의장의 법적 안전 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보협상에서 고위급 협의가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고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3일 베트남 하노이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쿠팡은 양국 정부 간 이슈가 되기에는 기업 간의 이슈가 많긴 한데, 한·미 간 안보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그동안 그런 방향에 대한 연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쿠팡 문제는 법적 절차대로 진행하고, 안보협상은 안보협상대로 진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안보협의가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고, 동맹관계 전체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보협상이)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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