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한 집의 불이 꺼졌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가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이미 일가족이 숨진 뒤였다. 사건은 곧 ‘생활고를 비관한 비극’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이 같은 사건의 이면에는 다른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사건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먼저 살해하거나 살해를 시도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단순한 ‘비극’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이 같은 사건은 대개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소비된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부모의 선택에 대한 동정과 이해가 뒤따른다. 반면 아이들의 의사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살고자 하는 권리와 생명에 대한 선택은 철저히 배제된 채 자녀의 삶은 부모의 결정에 종속된다. ‘동반자살’이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현실을 가리는 데 일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건을 가족 단위의 비극이 아니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명백한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극이라는 언어가 반복될수록 가해 책임은 흐려지고 예방과 개입을 위한 제도적 대응도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는 것은 선택권을 갖지 못한 아이들의 목소리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이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1. 2023년 피고인은 배우자 사망 이후 16살, 11살 두 자녀를 혼자 양육해 오던 중 투자 실패로 채무가 늘어나자 범행을 계획했다. 피고인은 미리 범죄 도구를 구입해 준비한 뒤 자녀들이 잠든 새벽 시간대 집 안 곳곳에서 착화탄을 피워 연기를 퍼지게 했다. 이후 자신도 안방에 누워 함께 숨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잠에서 깨어 연기를 발견하고 불을 끄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면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법원은 이 사건을 자녀를 대상으로 한 살해 미수 범죄로 판단, 피고인에 징역 3년을 판결했다.
#2. 2022년 피고인은 남편의 반복된 채무 문제와 연락 두절, 별거 상태에서의 양육 부담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받아오다 범행을 결심했다. 피고인은 자녀들과 함께 식사를 한 뒤 잠자리에 들었고 이후 잠든 상태의 두 아들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반항했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피고인은 자녀들과 함께 숨질 계획이었으며 남편과 시댁 가족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 범행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은 이 사건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살해 범죄로 판단해 징역 20년, 아동 관련 기관에 10년간 취업제한을 선고했다.
이외에도 지난 3월 울산에서는 30대 아버지 A씨와 미성년 자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죽음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가 사흘간 무단결석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학교 측의 신고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와 사회적 단절을 이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4월에는 40대 가장이 가족을 살해한 뒤 바다로 돌진한 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피의자는 가족에게 여행을 제안해 전남 무안 소재 펜션에 머문 뒤 수면제가 든 음료를 먹인 후 승용차를 몰고 진도항 인근 해상으로 돌진했다. 이 과정에서 고등학생인 두 아들이 숨졌으며 동승한 아내도 사망했다. 피의자는 약 1억6000만 원의 채무와 배우자의 건강 문제 등 생활고를 겪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이를 시도한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피해 아동 규모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인하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발간한 ‘자녀 살해 후 자살 피해아동 보호와 지원체계 연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관련 사건으로 인한 피해 아동(생존·사망 포함)은 147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160건, 피해 아동은 232명에 달해 월평균 약 2명의 아동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피해 아동의 연령대는 낮을수록 비중이 컸다. 한국피해자학회 학술지 ‘피해자학연구’에 게재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하급심 판결문 120건을 분석한 결과, 18세 이하 피해 아동 163명 가운데 12세 이하가 141명(86.5%)에 달했다. 특히 6~12세가 49.1%로 가장 많았고, 3~5세(22.7%), 0~2세(14.7%)가 뒤를 이었다.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는 가정 문제(38건), 경제적 문제(34건), 정신과적 문제(21건)가 꼽혔다. 특히 “자신이 사망한 뒤 자녀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왜곡된 이타주의적 인식이 범행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유형별로는 자녀를 실제 살해한 ‘살인기수’가 58건, 살해를 시도했으나 사망에 이르지 않은 ‘살인미수’가 62건으로 나타났다. 처벌 수준은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살인기수 사건의 경우 대부분 실형이 선고됐지만 일부는 심신미약이 인정돼 집행유예가 내려졌고 살인미수 사건은 약 72.6%가 집행유예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아동이 사망하지 않아 살인미수로 분류된 62건 중 38건(61.3%)은 보호관찰 등 보안처분조차 내려지지 않았다. 보호관찰 처분은 23건,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 수강명령은 13건에 머물렀다.
이 같은 수치는 이른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심각한 문제임을 드러낸다. 특히 생존 아동은 물론 사건을 목격한 형제자매 혹은 살해(기수, 미수) 피해아동의 형제자매는 극심한 심리적 충격을 경험하며 사회적 고립, 양육환경의 변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사건 이후 피해아동과 그 형제자매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더욱이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은 극단적인 아동학대이자 아동의 생명권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범죄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이를 ‘가족 동반자살’이나 ‘일가족 자살’ 등으로 표현해 온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2022년 6월 발생한 완도 가족 실종 및 사망사건 이전까지는 이러한 인식이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생활고를 호소한 부모가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비극’으로 포장하는 시각은 자녀가 살해된 본질을 가리고 아동학대 범죄로서의 성격을 흐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이를 명확히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왜곡된 인식이 예방과 대응을 지연시켜 왔다고 지적한다. 가족 내부의 문제로 축소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개입이 늦어지고 결과적으로 피해 아동이 보호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닌 공적 개입이 필요한 아동학대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더 나아가 아동의 생명과 권리를 최우선에 두는 보호·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아동을 별도 통계로 집계해 규모와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이들 상당수가 신체학대나 정서학대 범주로 분류되면서 사건의 특수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강미정 팀장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부모에 의해 생명 을 위협받는 다는 점에서 일반 아동학대와 비슷해 보이지만 발생 이후 가족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며 트라우마가 더 복합적이고 장기화된다는 특징이 있다”며 “기존 아동학대처럼 지속적 징후로 포착되기보다 별도의 위험 신호 속에서 단기간에 급격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사전 대응이 더욱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이 같은 경험은 성인기에도 우울·불안·행동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부모의 자살 시도나 사망을 경험한 경우 자해 및 자살 위험이 높아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보호자 상실과 생활 기반 붕괴가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심리치료뿐 아니라 경제·돌봄까지 포함한 통합적 지원이 필수적이며 사후 관리와 지원 역시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출산 전·후 위험 신호를 포착해 공공기관에 보고하거나 가정 방문 서비스를 통해 부모와 아동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등 조기 개입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처럼 선제적 개입과 데이터 기반 위험 탐지 시스템을 정교화해 위기 가정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아동학대 범죄로 명확히 다루기 위해 ‘비속살해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행 형법에는 존속살해죄는 규정돼 있지만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경우를 별도로 규정한 비속살해죄는 없는 상황이다.
강 팀장은 “비속살해죄를 형법이 아닌 아동학대처벌법 체계 안에서 규율해야 한다. 비속살해죄가 도입될 경우 처벌 강화는 물론, 해당 사건을 개인·가정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개입해야 할 중대한 아동학대 범죄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특히 해당 범죄가 아동학대처벌법에 포함될 경우, 생존 아동이 지자체 아동보호 체계로 연계돼 보호·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며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나 퇴거 명령, 수강 명령 등 보호조치와 함께 필요시 친권 제한·정지, 아동 분리 조치 등도 보다 실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대 아동학과 최아라 교수는 “자녀살해 후 자살 사건을 아동학대 사건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수사 단계부터 아동 보호 체계가 개입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생존 아동에 대해 단기 보호를 넘어 심리치료, 양육환경 재구성, 교육 지원까지 포함하는 장기 사례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아동 사망 사건을 다기관 협력으로 분석하는 아동사망검토제도(CDR)와 같은 국가 차원의 예방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며 “생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장기 추적 연구와 심리·정서적 특성을 반영한 상담 및 개입 모델 개발이 필요하며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장기 상담과 사례관리 체계를 보다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단일 정책이 아닌 보건·복지·교육·사법이 연계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 교수는 “양육 스트레스 관리, 아동 발달 이해, 정서 조절, 위기 상황 대처 등을 포함한 교육이 자녀 출산 전부터 청소년기까지 연속적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으며 모든 가정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서비스 기반을 확대하고 그 안에서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서는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른 보호조치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으며 집행유예 선고 시에도 치료 프로그램, 보호관찰, 상담 참여 등을 연계해 재발 방지 개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아울러 아동 사망 및 중대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계·분석 체계 구축이 필요하고 이와 함께 이웃과 지역사회의 관심과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90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