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나들이를 계획 중이라면, 꼭 가봐야 할 서울 전시 명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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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나들이를 계획 중이라면, 꼭 가봐야 할 서울 전시 명소 3

에스콰이어 2026-04-28 16:00:00 신고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서촌: 데미안 허스트의 ‘불멸’과 유영국의 ‘본질’이 만나는 취향의 기준점
  • 혜화: 서울시립미술관《글짓, 쓰는 예술》, 읽는 행위가 조형이 되는 해석의 공간
  • 명동:《소멸의 시학》전시, ‘썩는 대신 삭는’ 미술이 전하는 존재의 우아한 마침표

서울은 회색이다.

콘크리트 빌딩 숲, 검은 슈트의 행렬, 그리고 무표정한 흰 셔츠들. 이 거대한 무채색의 도시에서 자신만의 색을 고수하는 일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아침 출근길, 유리 건물들은 하늘을 반사할 뿐 스스로 색을 내지 않는다. 이 지독한 관성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본연의 빛을 지켜낼 것인가.


4월의 끝자락, 나는 서울 전시의 세 좌표를 걸었다. 기준이 세워지는 서촌, 해석이 발생하는 혜화, 그리고 소멸의 우아함이 머무는 명동. 이 길 위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빛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였다.



취향의 기준을 세우는 법, 서촌

데미안 허스트〈신의 사랑을 위하여〉 인간의 두개골 모양으로 주조한 백금에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대표작이다.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데미안 허스트〈신의 사랑을 위하여〉 인간의 두개골 모양으로 주조한 백금에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대표작이다.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인왕산 아래, 당신의 미적 좌표를 재설정할 시간이다. 서촌은 설명보다 전제가 앞서는 동네다. 경복궁 서쪽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갤러리 앞에 서게 되고, 그 문을 열면 시공간을 초월한 미학적 충돌을 목격하게 된다. 이곳에선 동시대 가장 도발적인 아이콘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와 한국 추상의 거장 유영국의 세계가 공존한다.


데이미언 허스트〈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데이미언 허스트〈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특히 이번 서울 전시에서 마주하는 데미안 허스트는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테마를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Nothing Is True But Everything Is Possible)》에서 해당 시리즈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Natural History' 시리즈는 포름알데히드 속에 보존된 생명체를 통해 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조롱하듯 전시한다. 투명한 수조 너머의 서늘한 푸른 빛은 죽음을 박제함으로써 오히려 생의 화려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전통을 파괴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미학적 질서를 찾아내는 그의 태도는, 산과 바다의 선을 해체해 추상의 본질을 뽑아낸 유영국의 세계와 기묘하게 닮아 있다.


유영국 ‘작품’[유영국미술문화재단] /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유영국 ‘작품’[유영국미술문화재단] /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 전시 중에서도 미학적 정점을 찍는 유영국 회고전은 50년 전의 원색이 지금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를 증명한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서촌의 갤러리들은 리넨 소재의 벽지와 빈티지한 조명으로 관객을 맞이하며, 이곳에서 당신은 "내가 진정으로 반응하는 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서촌의 갤러리들은 리넨 소재의 벽지와 빈티지한 조명으로 이 거대한 담론들을 차분하게 감싸 안는다. 이곳에서 당신은 "내가 진정으로 반응하는 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유행이 아니라 지속에 힘을 싣는 것. 서촌의 골목에서 당신의 미적 기준은 비로소 견고해진다.



문장이 예술이 되는 순간, 혜화

포스터 /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포스터 /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기준이 세워졌다면 이제 그것을 읽어낼 차례다. 혜화는 활자의 동네다. 대학로의 붉은 벽돌 사이로 연극의 대사가 흐르고, 작가들의 사유가 문장으로 박제된다. 이곳의 공기를 가장 잘 담아낸 서울 전시는 단연 서울시립미술관(SeMA)의《글짓, 쓰는 예술》이다. 이 전시는 텍스트가 어떻게 시각적 예술로 육화(肉化)되는지를 실험한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작가의 메모, 지워진 흔적, 덧붙여진 단어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무채색 사유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결국 세상이라는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칠하는 행위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누군가는 ‘시리다’고 적고, 누군가는 ‘시원하다’고 읽는다. 그 해석의 편차가 곧 그 사람의 고유한 색이 된다.


스마트폰 화면 속의 색은 선명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혜화에서 만난 문장들은 물성을 가진 해석의 힘을 보여준다. 손때 묻은 문장의 흔적들이 모여 하나의 스펙트럼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만의 무지개를 갖게 된다. 색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한 기록을 통해 발굴하는 것이다. 혜화에서의 서울 전시 관람은 당신의 메모장을 예술로 바꾸는 경험이 될 것이다.



우아한 실종을 목격하는 법, 명동

고사리의 〈초사람〉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고사리의 〈초사람〉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명동을 지배하는 동력은 속도다. 일주일이면 철거되는 팝업스토어와 찰나를 다투는 네온사인 사이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소멸의 시학'을 마주한다. 명동에서 소비되는 모든 것은 유통기한이 짧다. 하지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5월 3일까지 진행되는《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이 사라짐을 '부패'가 아닌 '발효와 순환'으로 재정의한다.


이 전시는 영원히 변치 않는 '불후(不朽)'의 명작이라는 관습에 도전한다. 흙더미가 전시장을 뒤덮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래가며 결국 가루가 되어 사라질 작품들은 무조건적인 영생을 거부한다. 이는 소유하는 순간 소모가 시작되는 명동의 논리 안에서, 오히려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것'들의 가치를 묵직하게 되묻는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달릴 때 당신만 속도를 늦추고 사물이 스러져가는 결을 살피는 것, 그것이 명동을 읽는 가장 현대적인 태도다. 물건은 소유하는 순간 진부해지지만, 그 사물이 품은 소멸의 과정을 관찰하는 순간 우리에겐 우아한 잔상이 남는다. 5월 초, 서울 전시 루트에 명동과 삼청동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찰나의 미학에 있다.



결론: 당신의 발걸음이 곧 전시가 된다

서울의 봄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벚꽃이 피어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트렌드는 휘발되고, 도시의 소음은 우리를 끊임없이 무채색의 군중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거대한 관성 속에서 당신이 지켜내야 할 것은 따뜻한 위안이 아니라, "무엇이 나를 정의하는가"에 대한 서늘한 확신이다.


서촌에서 세운 견고한 기준과 혜화에서 기록한 문장, 그리고 명동에서 포착한 소멸의 우아함. 서울 전시를 경유하는 이 여정은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행위를 넘어, 타인의 시선에 마모된 당신의 감각을 다시 벼리는 과정이다. 이번 주말, 당신이 멈춰 서서 바라보는 그 지점에서 당신만의 선명한 색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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