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타이거즈 출신 레전드 투수 윤석민 한화 이글스 마운드를 진단하며 김서현의 최근 부진 원인을 짚었다. 조심스러운 어조였지만, 그 안에는 냉정한 현실 진단이 담겨 있었다.
한화 이글스 김서현. / 뉴스1
윤석민이 직접 입을 열어 전한 김서현의 진짜 문제는 구종도, 구속도 아닌 투구 폼 자체였다.
올 시즌 11경기 평균자책점 9.00…2군행까지
김서현은 올 시즌 11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시즌 후반기부터 이어진 부진이 올해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개막 당시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극심한 제구 난조로 결국 잭 쿠싱에게 마무리 자리를 내줬고, 이후 추격조로 뛰어왔다.
그러다 지난 27일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에게 2군행을 지시했다. 중요한 시점에 다시 기회를 받을 때마다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고, 구단 입장에서도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지난 14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김서현은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 올라 이혜승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결국 2군행 한화 김서현. / 뉴스1
윤석민 "전 세계에 하나 있는 폼…못 바꿔요"
윤석민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사이버 윤석민'을 통해 김서현의 투구 폼 자체가 수정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봤다.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프로에서 지금 같은 폼으로 던지는데, 못 바꿔요. 계속 이 폼으로 가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냥 본인이 갖고 있는 운동신경과 투구 메커니즘으로 하는 건데, 존 안으로 그냥 계속 넣어야 한다"라고 했다. 자세 교정보다는 현재의 폼으로 스트라이크를 꾸준히 잡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뜻이다.
마운드에서 눈물을 보인 장면에 대해서도 윤석민은 선배로서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마음이 아프긴 한데, 한편으로는 아직 더 단단해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슬퍼서 운 게 아니라 본인도 답답해서 울었을 거다. 근데 그 표현 방법은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한화 이글스 100만 팬이 보고 있다"라고 했다.
한화 이글스 투수 김서현의 투구폼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석민. / 유튜브 '사이버 윤석민'
제구 문제보다 깊은 구조적 난점
윤석민이 지적한 핵심은 단순한 제구 불안이 아니다. 제구가 불안한 투수에게는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존을 작게 설정하고 들어온다. 볼이 많으니 기다리며 실제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만 공략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유인구를 던져도 타자가 속지 않을 확률이 높다. 제구가 좋은 투수가 던지는 바깥쪽 공에 타자가 속아 헛스윙을 하는 이유는, 그 투수가 평소에 코너 워크를 정교하게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김서현에게 타자들이 양쪽 사이드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유인구 효과 자체가 상실됐다는 의미다.
윤석민은 "김서현 스타일은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밀고 있는, 제구보다 구위를 바탕으로 존 안 가운데로 던져서 타자의 범타를 유도하거나 헛스윙을 유도하는 게 맞다"라고 했다. 구위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김서현에게 맞는 방향이지만, 그것도 결국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이 들어가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볼이 많으면 구위가 아무리 좋아도 압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 투수 김서현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석민. / 유튜브 '사이버 윤석민'
"외로운 싸움…5~6년간 일정한 제구 던지면 된다"
윤석민은 결국 김서현이 스스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폼도 정교하게 던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5~6년간 일정한 제구로 던지면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외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폼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이 폼으로 꾸준히 스트라이크를 잡는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명확히 했다.
보직 변경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좋은 선택이라기보다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라고 답했다. 27일의 2군행도 같은 맥락이다.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게 윤석민의 시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진단
김서현의 부진 원인과 해법을 두고 전문가들의 시각도 갈린다. 손건영 SPOTV 해설위원은 지난 26일 대전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 중계에서 김서현이 투구 시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키움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롯데 자이언츠를 거친 투수 출신 강윤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포볼왕 강윤구'를 통해 해당 부분을 수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윤석민 견해와 같은 방향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이 비슷한 지점을 가리키면서도, 해법에서는 의견이 나뉘는 상황이다. 공통된 결론은 하나다.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김서현 투구폼 모습. / 뉴스1
한화의 고민 그리고 김서현의 숙제
한화 이글스는 2022년 드래프트 1순위로 김서현을 지명했다. 당시 기대치는 단순한 유망주가 아니라 팀 마무리 에이스였다. 실제로 데뷔 초반 빠른 공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기대를 충족시키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기대는 현실과 간극이 크다. 2군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올라오느냐가 김서현의 커리어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윤석민이 말한 '5~6년간 일정한 제구'라는 기준은, 역설적으로 지금 당장은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석민 현역 당시 마운드에서의 모습. / 뉴스1
윤석민이 말할 수 있는 이유…KBO 마운드를 누빈 20년
윤석민의 발언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무게감을 갖는 건 단순히 유명 선수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기아 타이거즈에서 2005년~2013년, 2015년~2019년까지 오랜 기간 활약하며 통산 77승을 거뒀다. 201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노퍽 타이즈에서 공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2011년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고, WBC 국가대표로도 다년간 활약했다. 마운드에서 직접 제구 싸움을 해온 투수가 같은 투수를 바라보며 내놓은 진단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다르다.
윤석민 본인도 전성기 시절 제구와 구위를 동시에 갖춘 투수로 평가받았다. 그가 "제구보다 구위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자신의 방식이 아닌 김서현의 조건에 맞춘 처방이다.
2022년 1순위 지명…그 기대는 지금 어디에
김서현은 2022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라운드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고졸 신인 중 최고 평가를 받은 자원이었다. 최고 구속 150km대 중반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변화구 조합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데뷔 초반 1군 무대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듯 보였지만, 제구 불안이라는 과제는 프로 무대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마추어 시절 압도적인 구위로 커버되던 부분이 프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20대 초반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윤석민이 지적했듯 폼 자체의 구조적 한계는 나이와 별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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