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을 약속했지만, 원가 산정과 정산 기준의 불확실성으로 제대로 된 손실 보전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공급이 이뤄지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적용된 3월 3·4주 동안 국내 4대 정유사(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가 입은 손실은 약 1조26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당초 국제 제품가격 변동률을 반영해 최고가격을 설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3~4차 조정에서 물가 부담 등을 이유로 가격을 동결하면서 시장 괴리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국제 가격 상승분이 국내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일부 시기에는 내수 공급가격이 수출 가격 대비 최대 40% 낮아지는 왜곡이 발생했다. 실제로 경유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리터당 1200원가량 낮게 형성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리터당 이익이 낮은 저마진 산업 특성상 이같은 가격 억제는 정유사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여기에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수 공급이 이어지면서 수출 가능 물량을 국내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수출 대비 수익을 포기하는 ‘기회비용 손실’도 확대되고 있다. 결국 판매량이 늘어도 이익이 줄어드는 왜곡된 구조가 고착되며 정유사들의 손실 부담이 빠르게 커지는 양상이다.
정유업계 손실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최고가격제를 둘러싼 보전 방식에서 정부와 시각차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제도 시행으로 발생한 손실을 온전히 보전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국제 시세가 아닌 원가 기준으로 손실을 산정해 검증 후 보전액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손실 규모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제품별 원가 구조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업계는 복합 정제 공정 특성상 휘발유·경유별 원가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실제 손실을 충분히 반영받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정유업 특성상 원유 투입부터 제품 생산까지 결합공정으로 이뤄져 개별 제품 원가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유를 생산 설비에 투입하면 휘발유·경유 등 여러 제품이 동시에 생산되는 구조상 개별 제품별 원가를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이에 각 사가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배분 기준 역시 공통된 기준으로 인정되기 힘든 여건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원가 자료 자체가 핵심 영업기밀인 만큼 외부 공개에 대한 부담도 크다. 특히 회사별로 원가 배분 방식이 다른 상황에서 자료가 공개될 경우 기업 간 비교 논란이나 추가적인 규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손실 보전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원가 제출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손실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정부가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할 경우 실제 손실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면서 “제도 취지에 맞는 보전을 위해선 보다 객관적이고 일관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는 현행 원가 기반 손실 산정 대신 국제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한 보다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수출 가능 물량을 내수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가격 차이를 손실로 인정하는 ‘수출가격 기준’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며 국제 시세 대비 손익을 비교하는 구조인 만큼 계산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정부가 손실 보전 기준과 산정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기준 없이 사후 검증에 의존할 경우 기업과 정부 간 해석 차이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손실 인정 범위와 입증 방식이 명확히 정립돼야 제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고 이에 맞춘 대응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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