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목이 타거나 소화가 안 될 때 동네 약국을 찾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다이소 매장을 찾은 시민이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 뉴스1
이제 사람들은 500원짜리 물건을 사러 가던 생활용품 매장 다이소에서 소화제를 바구니에 담는다. 1897년 처음 세상에 나와 국내 최장수 의약품으로 불리는 동화약품의 ‘활명수’가 그 중심에 있다. 동화약품은 다이소 전용으로 내놓은 제품인 ‘편안 활’이 다이소 식품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편안 활은 출시되자마자 초도 물량이 모두 팔려나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요즘 소비자들이 약국보다 접근성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다이소표 건강식품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약품은 활명수를 포함해 모두 9개 품목을 다이소 매대에 올리며 본격적인 채널 확장에 나섰다. 100년 넘게 지켜온 전통의 브랜드가 유통 혁신의 최전선에 선 셈이다.
늘어나는 다이소 건강식품... 유한양행도 합류했다
다이소 매대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현재 다이소에서 팔리는 건강식품은 10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3월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이 30여 개 제품을 처음 선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종류가 3배 넘게 늘었다. 과거 유통망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대형 제약사들도 하나둘 다이소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내 대표 제약사인 유한양행도 지난달부터 생유산균 제품을 다이소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핵심 고객인 약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약국 밖 진출을 꺼려왔던 기업들이 태도를 바꾼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선택권 확대 요구가 거세진 데다 가성비 높은 상품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약사들도 더 이상 약국이라는 단일 플랫폼에만 머물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약국 독점 구조의 균열
국내 의약품 유통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0년 넘게 약국 중심으로 굴러왔다. 제약사들에게 약국은 거절할 수 없는 핵심 유통 경로였고 약사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었다. 제약사가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으로 판매망을 넓히려 할 때마다 약사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동화약품이 출시한 다이소용 신제품 모음 이미지. / 동화약품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박카스 사태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박카스를 포함한 48개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편의점 판매를 허용하자 약사들은 불매운동을 벌이며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제조사인 동아제약은 타우린 함량이 높은 약국용 제품과 마트용 제품을 따로 만드는 고육책을 내놓아야 했다. 2014년에는 고려은단이 이마트에서 기존보다 30퍼센트 싼 비타민을 팔았다가 약사들로부터 ‘중국산 원료’ 의혹 공세에 시달리며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약사들이 유통 경로 다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매출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약국은 정해진 조제료 수익 외에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판매를 통해 부수입을 얻는다. 만약 다이소 같은 대형 유통망에서 비슷한 제품을 저렴하게 팔게 되면 약국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약사회의 단체 행동을 조사하는 등 기득권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성비 찾는 소비자들... 편의점 넘어 다이소로
소비자들이 다이소에서 건강식품을 사는 이유는 명확하다. 가격이 싸고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약국에 들어가 약사와 상담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장을 보듯 필요한 영양제나 소화액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고물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적은 용량의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성향이 짙어졌다.
지난해 3월 일양약품은 다이소 입점을 계획했다가 약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닷새 만에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동화약품과 유한양행 같은 상위 제약사들이 안착하면서 그런 불문율은 힘을 잃었다. 제약사 입장에서도 약국 매출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비층인 2030 세대를 다이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추세와 한국의 현실... 온라인 직판까지 가나
다이소에서 판매 중인 건강식품 / 다이소 홈페이지 캡처
해외에서는 이미 제약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파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는 일라이릴리나 노보노디스크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체 온라인 사이트를 열고 비만 치료제 등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팔고 있다.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 편의를 높이는 전략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약사법에 따라 안전상비의약품을 제외한 약은 약국에서만 팔 수 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외품의 경우 유통 장벽이 낮아지면서 제약사들이 이 분야를 중심으로 다이소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약국이 유일한 유통 플랫폼이던 시대가 저물고 다채로운 채널이 열리는 과도기에 접어든 것이다.
유통 전략의 대전환... 제약사들의 새로운 승부수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활명수의 다이소 돌풍이 업계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고 전했다. 과거처럼 약사들의 불매운동을 두려워해 시장의 흐름을 외면하기에는 소비자의 요구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제 약국용 프리미엄 제품과 유통용 가성비 제품으로 라인업을 이원화하며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다이소 역시 단순한 생활용품점을 넘어 드럭스토어의 역할까지 흡수하며 덩치를 키우는 중이다. 화장품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식품과 건강기능식품까지 영역을 넓히며 기존의 유통 질서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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