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과 함께 ‘일본식 표기 의심 지명(地名)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2020년 전국적으로 시작한 이 사업에 따라 인천에서는 그동안 138개의 땅이름을 대상으로 보고 조사했다. 그 결과 106개는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고 31개는 아직 조사 중이며 나머지 하나 ‘작약도(芍藥島)’는 일본식 지명으로 판명돼 원래 이름인 ‘물치도(勿淄島)’로 바꿨다고 한다.
아직 조사 중인 31개 지명 중에는 연수구 송도와 부평구 백마정, 옹진군 이작도 등이 들어 있다. 시는 이들을 좀 더 조사한 뒤 내년 중 지명위원회를 열어 변경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뜻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선정 기준이 분명치 않을 뿐 아니라 지명 바꾸기를 너무 가볍게 본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인천의 조사 대상인 138개의 땅이름 중에는 계양산이나 마니산처럼 고려 및 조선 초기부터 쓰인 이름들에 통일신라 때 생긴 강화 교동(喬桐)까지 들어있다. 이들이 왜 일본식 표기 의심을 받아 ‘정비’ 대상이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반면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이 지어 붙인 것이 분명한 연수동·효성동·창영동 등의 여러 이름은 아예 대상에서 빠져 있다.
아직 조사 중이라는 이름들도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송도(松島)’다. 인천의 송도는 1936년 당시 인천시장 격이었던 일본인이 서울과 인천의 자산가와 상공인들을 모아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세우게 하고 그 결과로 이듬해 송도유원지가 문을 열면서 생긴 이름이다. 이는 앞서 1913년 부산에 송도해수욕장이 문을 열면서 송도라는 이름이 생긴 것과 똑같은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일본인은 그들이 예부터 일본의 3대 절경(絶景) 중 하나로 꼽는 미야기현의 ‘송도’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모두 출전했던 군함인 ‘송도함’을 기려 우리나라 곳곳에 이 이름을 심어 놓았다.
따라서 송도는 일제가 남긴 이름이 맞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름을 바꾸는 것은 장단점을 따져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다.
송도는 이전의 송도유원지에 이어 이제는 송도경제자유구역 등을 통해 인천뿐 아니라 전국, 아니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됐다. 이를 ‘일제의 잔재’라 하여 이제 다른 이름으로 바꾸면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이고 지금만큼의 지명도를 되찾는 데도 무척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꿈으로써 이런 혼란과 피해를 감수할 만큼 강렬한 민족의식이 끓어오를지도 의문이다.
송도뿐 아니라 일제의 잔재 지명은 아직도 전국에 숱하게 널려 있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는 하나하나 잘 살펴보고 결정할 일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겠다면 우선 무엇이 진짜 잔재인지, 그것들이 왜 문제인지부터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더 나아가 진정 욕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상대를 정확히 알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런 연구와 노력은 없이 광복되고 80년이 넘은 지금도 그저 해묵은 민족감정 수준에서 일본에 대응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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