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동시지방선거(이하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는 가운데 행정 혁신을 통해 지역 발전을 주도한 해외 지자체장들의 사례가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여전히 그들에겐 경제 침체와 재정 위기에 직면한 도시의 재설계를 통해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 국가, 지역 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성공 사례는 지역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지자체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쓰레기 도시를 생태 도시로 바꾼 브라질 레르네르…소통으로 도시를 바꾼 인니 조코위
브라질의 쿠리치바 지역을 생태 도시로 탈바꿈한 고(故) 자이메 레르네르 전 시장은 지자체 혁신 성공 사례를 나열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다. 레르네르는 브라질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출신 행정가로 1971년 33세의 나이에 쿠리치바 시장으로 임명된 후 총 세 차례(1971~74, 1979~83, 1989~92)나 시장 직을 수행했다. 레르네르가 처음 시장으로 임명되던 1970년 초 브라질은 군부독재 체제로 유지됐고 당시 그는 여당이었던 국가혁신연맹 소속이었다. 이후 브라질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진보 진영으로 당을 옮겼지만 그는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오로지 지방 행정에만 몰두했다.
1970년대 초 쿠리치바는 브라질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구가 60만명을 돌파하는 등 지역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단기간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당시 우후죽순 집을 지으면서 1인당 녹지 면적은 0.5㎡까지 쪼그라들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콘크리트로 뒤덮인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급증한 차량에 비해 도로가 매우 협소해 교통체증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도심 외곽의 빈민가는 엄청난 오물과 쓰레기의 유입으로 수시로 전염병이 발생했다.
레르네르는 가장 먼저 교통체증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지하철 대신 기존 도로를 활용한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세계 최초로 도입해 지하철 건설비용 80분의 1 수준의 비용만 투입해 교통체증 문제를 해결했다. BRT 구축 이후 시민의 약 75%가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덕분에 도심을 오가는 차량 수가 줄면서 대기오염 수치도 타 대도시 대비 30% 이상 낮게 유지됐다. 빈민가의 쓰레기 문제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그는 빈민가 주민들이 쓰레기 4kg을 가져오면 식품 1kg이나 버스 토큰으로 교환해 주는 '녹색 교환(Green Exchange)' 프로그램을 도입해 연간 1만1000톤 이상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쿠리치바의 1인당 녹지 면적은 취임 전 대비 약 100배 넘게 증가한 52㎡로 늘어났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였다.
쿠리치바의 행정업무 역량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11월 15일 거리'의 보행자 전용 도로 전환이다. 1970년대 초 쿠리치바 시내 중심가인 '11월 15일 거리'는 차도가 매우 좁았으며 몰려드는 자동차로 인해 매연, 소음 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레르네르는 해당 거리를 아예 보행자 전용 거리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차가 다니지 않으면 유동인구가 급감할 것이라는 상인들의 주장에 부딪혀 거듭 무산됐다. 레르네르는 다수를 위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모두가 쉬는 금요일 새벽 중장비를 투입해 주말 48시간 동안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보도블록과 화단을 설치하는 기습 공사를 단행했다.
상인들의 반발에 대응하는 그의 대처는 평화적이면서 기발했다. 월요일 아침 상인들이 차량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려 했으나 그는 공사 현장에 긴 종이를 깔고 '아동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앞으로 차를 몰 수 없었던 시위대는 결국 발길을 돌렸고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당초 우려와 달리 이 거리는 꽃과 조경이 풍성해지면서 '꽃의 거리'라는 별칭을 얻었고 쿠리치바 시민들의 가장 사랑하는 만남의 장소가 됐다. 그림 그리기 대회' 역시 쿠리치바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보행자 유동 인구가 크게 늘며 오히려 상권이 활성화되자 당시 반대하던 상인들조차 행정의 효용성을 인정하며 그의 강력한 지지자로 돌아섰다. 레르네르는 퇴임 시기 92%라는 전무후무한 시민 지지율을 기록했다.
오늘날 쿠리치바는 전 세계 도시 계획가들이 자주 방문하는 생태 도시의 성지로 불리며 매년 수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레르네르가 설계한 BRT 시스템은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100여개 도시로 확산됐으며 도시 전체 면적의 18%가 공원과 보존 지구로 지정돼 기후 변화 시대의 가장 모범적인 도시 모델로도 평가받고 있다. 쿠리치바는 현재도 브라질 내에서 높은 교육 수준과 낮은 범죄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주거 만족도도 매우 높은 도시로 꼽히고 있다. 레르네르는 시장직 퇴임 이후에도 파라나주 주지사에 선출돼 쿠리치바의 성공 모델을 주 전역으로 확장하며 교육과 보건 행정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21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당시 브라질정부는 그를 국가의 영웅으로 예우하며 도시 계획을 통해 인류의 삶을 개선한 그의 공로를 기렸다.
가구 사업가 출신의 조코 위도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2014~2024년)은 고향 수라카르타 시장, 자카르타 주지사 등을 거쳐 국가 수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군부나 대재벌 가문 출신이 주를 이루던 인도네시아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서민 출신임에도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직에까지 올랐는데 그 배경에는 수라카르타 시장 재임 시절 보여준 탁월한 행정 역량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라카르타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범죄율이 높은 도시로 악명 높았다. 도심 광장과 도로 주변은 6000여곳에 달하는 노점상들이 점유해 교통마비는 물론 위생 문제도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지자체 차원에서 도시 정비 차원의 강제 철거가 수차례 진행됐으나 노점상들의 격렬한 저항과 유혈 충돌로 번번이 무산됐다. 위도도 시장은 취임 이후 공권력 투입 대신 '블루수칸(Blusukan·현장 소통)'이라 불리는 방식을 앞세워 문제에 접근했다. 그는 노점상 대표들과 약 7개월간 54차례 가량 식사를 함께하며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이전을 설득하는 인내를 보여줬다. 그 결과, 단 차례의 물리적 충돌 없이 모든 노점상을 새로 조성된 현대식 시장으로 이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소통 행정은 곧장 지표 개선으로 이어졌다. 위도도 임기 전 정체됐던 수라카르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임기 중 인도네시아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6.25%를 기록했다. 노점 정비와 인프라 개선 이후 관광객 수가 이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결과였다. 덕분에 세수도 그의 취임 전과 비교해 약 80% 늘었다. 위도도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10년 시장 재선 당시 90.09%라는 압도적인 투표율로 당선됐으며 2012년에는 세계 시장 재단이 선정한 '세계 최고 시장'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수라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투명한 행정 시스템을 갖춘 도시이자 중소도시 활성화의 표준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의 낙후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것도 모자라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수라카르타를 완전히 탈바꿈 시킨 위도도 전 대통령은 자카르타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 당선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쓰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시장 시절 증명한 현장 중심의 실용주의 정책을 국가 정책 시스템 전반에 적용해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과 경제 발전을 주도했다.
도시 전체를 박물관으로 바꾼 스페인 아즈쿠나…수치 중심의 도시 경영 표본 뉴욕 블룸버그
스페인의 고(故) 이냐키 아즈쿠나 빌바오 전 시장은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카드로 쇠락한 산업 도시를 문화 도시로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아즈쿠나 전 시장은 심장전문의 출신으로 1999년 빌바오 시장에 당선된 이후 2014년 재임 중 타계할 때까지 무려 15년 동안이나 도시를 책임졌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도시의 쇠락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처방전을 내놓았다. 2012년에는 전 세계 800여명의 후보를 제치고 '세계 최고 시장' 1위에 오르며 파산 직전의 빌바오를 구한 영웅으로 평가받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빌바오는 철강·조선업의 몰락으로 지역 실업률이 35%까지 치솟으며 사실상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주력 산업을 잃은 빌바오의 네르비온 강변에는 버려진 공장들이 방치돼 있었고 수질 오염은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젊은층은 일자리를 찾아 매년 수천 명씩 도시를 떠났고 남은 주민들 역시 절망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바빴다. 당시 빌바오에게 붙은 수식어는 '스페인에서 가장 살기 싫은 도시'였다.
그러나 아즈쿠나 전 시장 취임 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빌바오 리아 2000' 프로젝트를 선포하며 도시의 정체성을 공업에서 문화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시도에 나섰다. 특히 문화 도시의 상징인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를 위해 당시 빌바오 연간 예산의 절반 이상인 1억 달러(약 1300억원)를 과감히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주민들은 "차라리 그 돈으로 공장을 지으라"는 등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에게 지하철 설계를,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에게 도시 디자인을 맡기는 등 세계적 문화 거장들에게 도시 설계를 맡겨 모든 공공시설의 예술화를 시도했다.
아즈쿠나 전 시장의 예술 행정의 효과는 경이로웠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 후 첫 해에만 예상치의 3배가 넘는 130만명의 관광객이 몰렸고 건립 비용 1억 달러는 불과 3년 만에 관광 수입으로 전액 회수됐다. 아즈쿠나 전 시장 재임 기간 동안 빌바오의 관광 수입은 매년 평균 2억1000만유로(한화 약 3000억원)를 기록했으며 약 45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쇠락했던 도시의 1인당 GDP는 스페인 평균보다 30%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덕분에 아즈쿠나 전 시장의 지지율은 임기 내내 80%를 상회하는 수준을 보였다.
지금도 빌바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시 재생 모델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매년 1억4000만 유로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으며 과거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네르비온 강변은 쾌적한 산책로와 녹지로 변모했다. 공장 지대에는 스페인 최대 은행 중 하나인 BBVA, 유럽 신재생 에너지 기업인 이베드로라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들어섰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도시 설계가 매우 잘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도시 수준이 높아지면서 빌바오는 유럽 내에서도 가장 낮은 범죄율과 높은 삶의 질을 보유한 도시 중 하나로 거듭났다.
아즈쿠나 전 시장은 2003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후 10년 넘게 투병하는 와중에도 시장의 책임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현장을 누비며 "나의 의술은 이제 환자가 아닌 빌바오라는 도시를 고치는 데 쓰이고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 그가 현직 시장으로 타계했을 때 빌바오 시내의 모든 상점은 자발적으로 문을 닫고 조기를 게양했다. 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의 운구 행렬을 배웅했다. 그는 정치를 넘어 '도시의 영혼을 바꾼 리더'로서 전 세계 행정가들의 귀감이 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은 기업가적 실용주의로 무너진 세계 경제의 중심지를 재건시킨 주역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글로벌 금융 정보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의 창업자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뉴욕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억만장자 기업가 출신답게 재임 중 철저한 사업가적 면모를 보였으며 퇴임 후에도 뉴욕시의 환경 및 보건 문제에 수조원을 기부하며 뉴욕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과시했다.
2002년 블룸버그 취임 당시 뉴욕은 9·11 테러의 상흔이 가시지 않아 대공황 이래 최악이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세계 무역센터 붕괴로 도심 경제는 마비됐고 약 60억달러(한화 약 8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 적자까지 겹쳤다. 테러에 대한 공포로 청년들과 기업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으며 범죄율도 눈에 상승했다. 세계 최고의 도시의 면모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블룸버그는 취임 직후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신념 아래 시청에 '통합 데이터 분석 센터'를 설립하고 모든 행정 지표를 수치화했다.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재산세를 18.5% 인상해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한편 뉴욕을 금융 중심지에서 테크 기반의 '실리콘 얼레이(Silicon Alley)'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루스벨트 섬에 코넬 테크 캠퍼스를 유치했다. 또한 공공장소 흡연 금지, 트랜스지방 사용 제한 등 시민 건강을 위한 강력한 보건 규제를 시행했으며 데이터 기반 범죄 예측 시스템인 '컴스탯(CompStat)'을 고도화해 치안 불안을 해소했다.
그 결과, 블룸버그 12년 임기 동안 뉴욕의 범죄율은 취임 전 대비 32% 급감하며 미국 내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재탄생했다. 취임 당시 연 6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던 시 재정 상황은 그의 퇴임 당시 24억달러 흑자로 바뀌었다. 뉴욕의 고용 인구도 사상 최고치인 400만명을 돌파했다. 하이라인 공원 등 도시 재생 프로젝트 덕에 연간 관광객 수도 5430만명까지 늘었고 강력한 보건 규제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평균 수명도 미국 평균에 비해 2.2세 높아졌다.
그가 도입한 강력한 친환경 및 보건 규제는 현재 런던, 파리 등 전 세계 대도시들의 행정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시티 운영 시스템도 뉴욕 행정의 핵심 기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장직 퇴임 후 블룸버그는 자신의 기업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블룸버그 자선재단'을 통해 기후 위기 대응과 도시 혁신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전 세계 시장들의 네트워크인 'C40 기후 리더십 그룹'의 의장을 맡아 지방정부 차원의 환경 정책을 주도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의 성공적인 지방 도시 혁신 사례들은 지자체장이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 지역의 운명을 바꾸는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며 "지역 혁신은 단순 예산 투입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한 도시 분석과 기존 자산을 재해석하는 창의적 발상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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