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둔화와 물가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오던 통화정책의 무게추가 다시 물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빠르게 약화됐고,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다시 거론되고 있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금리는 한국은행이 1분기 성장률을 발표한 지난 23일 급등한 데 이어 다음 날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23~24일 이틀 동안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131%포인트 오르며 연 3.496%를 기록했다. 단기물뿐 아니라 장기물까지 전 구간에서 금리가 일제히 상승했다. 채권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의미하며, 시장이 금리 인하 기대를 거두고 향후 긴축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7%였다. 이는 2020년 3분기(2.2%) 이후 약 5년 6개월 만의 최고치다.
당초 시장에서는 중동발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과 공급망 충격이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으로 봤지만, 실제로는 반도체 경기 호황이 이를 상쇄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성장률은 한국 경제의 복원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해외 투자은행들도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JP모건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높였고, 씨티은행도 기존보다 상향한 2.9%를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NH투자증권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올리고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30%로 제시하는 등 경기 회복 기대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경기 회복이 오히려 통화정책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 둔화 우려가 완화되면서 금리를 서둘러 내릴 필요성이 줄어든 반면, 물가 압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수입물가 상승률은 전월 대비 16%를 웃돌았고,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2.9%로 상승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 불안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 총재 역시 최근 성장과 물가가 충돌할 경우 "물가 안정을 우선하겠다"고 밝히며 긴축 기조 유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다시 반영하기 시작했다. JP모건은 올해 11월과 내년 11월 각각 0.25%포인트씩 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씨티은행은 올해 말 기준금리를 연 3.0%, 내년에는 3.25~3.50% 수준으로 제시했다. 삼성증권 역시 내년 두 차례 인상 가능성을 반영해 최종 금리 전망치를 연 2.5%에서 3.0%로 높였다.
다만 1분기 '깜짝 성장'에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체력은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2%에서 올해 1.71%로 0.21%포인트 하락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1.57%까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2년 3.63%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2% 아래로 내려왔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자극이나 경기 과열 없이 한 국가가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한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2023년 잠재성장률 2.41%로 미국(2.44%)에 처음 뒤처졌고, 이후 격차는 2024년 0.13%포인트, 2025년 0.28%포인트, 올해 0.31%포인트로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중심 성장 구조가 경기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처럼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과 신산업 육성을 통한 성장 기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