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美 해군 훈련기 사업, 결국 ‘미국산 규정’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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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美 해군 훈련기 사업, 결국 ‘미국산 규정’에 막혔다

이뉴스투데이 2026-04-27 15:02: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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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의 TF-50N. [사진=록히드마틴]
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의 TF-50N. [사진=록히드마틴]

[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K방산이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리는 가운데, 지난 24일 전해진 미 해군 차세대 고등훈련기(UJTS) 사업 입찰 포기 소식은 한국 방산업계에 과제를 남겼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이 결국 이 사업 최종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세계 최대이자 가장 까다로운 방산시장인 미국의 ‘룰’을 제대로 읽고 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KAI-록히드마틴, 왜 입찰조차 하지 못했나

총사업비 100억달러(약 14조6000억원) 규모, 도입 물량 최대 216대가 예상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K-방산의 ‘꿈의 무대’로 불려왔다. 국산 고등훈련기 T-50 계열의 우수성을 세계 최대 무기시장인 미국에서 공식 검증받을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록히드마틴은 “UJTS 입찰제안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요구되는 미국산 부품 비율 및 기타 요인을 고려할 때 당사의 제안이 해당 프로그램에 있어 최적의 설루션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애초 업계에서는 T-50 계열을 기반으로 한 TF-50N이 UJTS의 유력 후보로 꼽혔다. 미 공군 훈련기(T-X) 사업 도전 경험이 있고, 이미 다수 국가에서 운용되며 신뢰성과 운용 실적을 쌓은 기체라는 점에서다. 경쟁 기종과 비교해 성능·가격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UJTS가 마침내 RFP 단계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미 해군의 최종 제안요청서(RFP)가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RFP에는 체계개발(EMD) 비용 상한을 약 17억5100만달러(약 2조5000억원) 이하로 제한한다는 조건이 명시됐다. 겉으로만 보면 기존 플랫폼을 가진 KAI에 유리해 보이는 조건이었다. 완전 신규 개발이 아닌, 검증된 기체를 최소한으로 개조해 쓰겠다는 취지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 비용 상한은 ‘미국 우선구매법(BAA)’과 결합되면서 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에 오히려 ‘독이 든 성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레이킹 디펜스 등 미 방산 전문매체에 따르면, BAA에 따라 미국산 부품 비율을 약 75%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기체 내부를 미국산 위주로 교체하고 재인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EMD 상한선 안에서 이를 감당하려면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번 결정의 주요 배경으로 BAA를 꼽는다. KAI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미국이 해외 무기를 수입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국산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라면서 “T-50이 록히드마틴과 공동개발했지만 ‘한국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지금 구조에서는 미국산이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도 이러한 판단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고 덧붙였다.

‘미국산 기준’의 벽…동맹도 예외 아니다

방산 전문가들은 한미 상호방위조달협정(RDP-A) 미체결 문제도 입찰 중단 요인으로 거론한다. RDP-A는 미국이 일부 동맹국에 대해 자국산 우선구매 규정을 일정 부분 완화해 주는 협정이다. 이 협정을 맺은 국가는 미국 방산 조달 시장에서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어 흔히 미 방산시장 진출을 위한 ‘입장권’에 비유된다.

반면 한국처럼 협정 체결이 안 된 국가는 BAA를 그대로 적용받아, 미국이 정한 ‘미국산 부품 비율’ 기준(2024년 65%, 2029년 75%까지 상향 예정)을 충족하지 못하면 최대 50%의 가격 할증을 감수해야 한다. 같은 성능의 무기라도 서류상 가격이 경쟁사보다 훨씬 비싸게 보이는 구조적 역차별이 생기는 셈이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제안 중인 T-7. [사진=보잉]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제안 중인 T-7. [사진=보잉]

이번 사업에는 이탈리아·스웨덴 등 RDP-A 체결국 기반 기종뿐 아니라 보잉, 시에라 네바다와 같이 미국 내 생산·통합 역량을 가진 업체들도 거론되면서 ‘미국산 중심 구조’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방산 전문가들은 TF-50N을 제외한 경쟁 기종들이 BAA 적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TF-50N은 애초부터 다른 기종들과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고 평가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BAA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는 동시에, 동맹국 기술이라도 미국 땅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단순한 동맹 관계만으로는 시장 진입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방산 전문가들은 기술력이 뛰어나도 이러한 ‘법적 방패’ 없이 미 방산시장에서는 근본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따내도 손해…미 방산시장 ‘비용 구조’의 현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번 입찰 중단 결정은 단순한 사업 철수라기보다 K방산의 미국 시장 진입 전략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장 교수는 “미국은 단순히 성능이 우수한 무기체계를 외국에서 도입하는 시장이 아니라, 자국 내 산업 기반 유지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기조와 함께 높은 수준의 미국산 부품 비율 요구는 사실상 현지 생산과 공급망 내재화를 전제로 하는 조건”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T-50 계열을 기반으로 한 접근은 ‘수출형 모델’에 가까웠고, 미국 방산시장의 구조와 근본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RDP-A와 관련해서도 “RDP-A는 단순한 협정이 아니라 상호 간 방산물자 조달 시장을 실질적으로 개방하는 제도적 기반”이라며 “이 협정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미국 내 생산, 기술 협력, 공급망 참여 등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이는 록히드마틴 입장에서도 사업성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특히 “경쟁 상대가 보잉과 같은 자국 기업인 점을 고려할 때, 제도적 열위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쟁에 나설 유인은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울러 장 교수는 “이번 입찰 중단은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공급망, 전략의 문제”라며 “K방산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구조적 과제를 드러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RDP-A 없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지금은 단기 사업 성과보다 중장기적 시장 진입 구조를 재설계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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