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주를 더 이상 ‘금리주’라는 낡은 이름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묶어둔 사이, 돈의 가격보다 돈의 길이 먼저 바뀌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낮추고 주택담보대출·DSR 규제를 조이기 시작했다. 그 틈에서 3월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은 3조5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예금은행 기업대출은 7조8000억원 불었다. 가계는 묶이고 기업으로 자금이 옮겨가는 흐름이 은행 실적의 표면 아래에서 수익 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이제 은행주를 읽는 기준은 금리의 높낮이가 아니다. 자본을 어디에 태우고, 그 자본이 얼마나 적은 위험가중자산으로 다시 이익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4대 금융, ‘자본 배분’에서 승부 갈렸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4대 은행·금융지주는 같은 업종 안에서도 각기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KB금융은 은행 이자이익에만 기대지 않았다. 비은행 계열의 이익 체력, 자본시장 수익, 높은 보통주자본비율(CET1), 자사주 소각을 묶어 ‘자본을 버는 금융회사’에서 ‘자본을 배분하는 금융회사’로 한 단계 올라섰다. 하나금융은 4조원대 연간 순이익 체력과 1분기 사상 최대권 실적을 앞세워 KB와의 간격을 좁혔다. 시장이 하나를 보는 기준도 단순한 이익 증가가 아니라, 낮게 눌려 있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얼마나 정상화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금융은 숫자만 보면 1분기 순이익이 후퇴했다. 그러나 회계적으로 더 중요한 대목은 이익의 일시적 둔화보다 CET1 13.6%가 만들어낸 선택지다. 증권·보험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수 있는 자본 여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기업은행은 결이 다르다. KB·하나·우리가 주주환원과 비은행 확장을 말할 때, IBK는 중소기업 대출과 정책금융이라는 본업으로 경기 하강 국면의 방어선을 쌓았다. 수익성의 화려함은 덜하지만, 배당 안정성과 정책은행의 신용 보강 효과가 투자 논리의 중심에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다만 같은 ‘은행주’라는 이름 아래 붙는 가격표는 다르다. KB에는 안정성과 자본 효율의 프리미엄, 하나에는 밸류에이션 갭 축소 기대, 우리에는 자본 정상화 이후 비은행 재편 옵션, IBK에는 배당과 정책은행 방어력이라는 투자 명제가 붙고 있다. 이제 은행주는 금리 방향만으로 사고파는 종목이 아니다. 자본비율, 위험가중자산, 비은행 이익 기여도, 주주환원 여력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는 ‘자본 배분주’가 됐다.
▲돈의 흐름 바뀌었다… 은행 실적, ‘구조’가 갈랐다
이런 흐름은 1분기 실적에서 곧바로 갈렸다. KB금융은 비은행 분산으로, 하나금융은 비용 통제로, 우리금융은 자본 확충으로, 기업은행은 정책금융으로 각기 다른 답을 냈다. KB금융의 1분기 순이익은 1조8924억원이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익의 모양이다. 그룹 순이자마진(NIM)은 1.99%,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3.94%, 영업이익경비율(CIR)은 35.4%, 대손비용률(CCR)은 0.40%였다. 수익성, 비용 통제, 건전성, 자본 효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은행이 금리로 번 돈을 비은행이 보태는 구조가 아니라, 은행·증권·자산운용·보험이 함께 이익을 끌어올리는 형태에 가까워졌다.
특히 비은행 이익 기여도가 40%를 웃돈 점은 KB금융을 다른 은행주와 가르는 대목이다. 금리 하락기에는 은행의 순이자마진이 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KB는 증권과 자산운용 부문이 수수료·트레이딩·운용 수익을 통해 이자이익 둔화를 흡수했다. 회계적으로 보면 단순한 이익 증가가 아니라 이익 원천의 분산이다. 이는 금리 민감도가 낮아지고, 시장 변동성을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뜻이다. KB가 ‘대장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규모 때문만이 아니라, 같은 금리 환경에서도 손익 변동성을 낮출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든 데 있다.
하나금융의 1조2100억원은 단순한 ‘2위’의 성적표가 아니다. 이익의 크기보다 이익을 남기는 방식이 더 날카롭다. 순이자마진(NIM) 1.82%로 외형 경쟁에서 앞서지 않으면서도, 대손비용률(CCR) 0.21%로 손실을 사실상 바닥까지 눌렀다. 여기에 영업이익경비율(CIR) 38.8%로 비용까지 조였다. 대출을 무리하게 늘려 마진을 키우는 대신, 부실과 비용을 동시에 통제해 순이익을 방어하는 구조다. 같은 금리와 같은 규제 환경에서도 실적 변동성이 작고, 이익의 지속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하나금융은 공격적 외형 성장보다 신용비용과 판관비를 낮춰 이익의 질을 끌어올리는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6038억원으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분기의 본질은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재무상태표다. 보통주자본비율(CET1) 13.6%까지 끌어올리며 중장기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안정성 지표가 아니라, 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의 범위를 바꿔놓는 기준선이다. 자본 여력이 커지면 위험가중자산을 다시 배치할 수 있고,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으며, 주주환원 정책도 공격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다만 1분기 이익 감소를 곧바로 구조 전환 비용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와 별개로 CET1 13.6%가 향후 비은행 재편의 선택지를 넓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현재 이익’이 아니라 ‘자본 이후의 선택지’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기업은행은 연결 순이익 7534억원으로 줄었지만, 이 은행은 애초에 다른 기준으로 평가된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 264조2000억원은 단순한 성장 수치가 아니라, 경기 하강 구간에서 신용을 떠받치는 마지막 축에 가깝다. 그럼에도 고정이하여신비율(NPL)을 1.28% 수준에서 묶어냈다. 대출을 늘리면서 부실을 억제했다는 점에서, 신용 관리 역량의 한계를 시험받는 구간을 통과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은행이 아니라, 경기 하방을 지탱하는 구조적 역할을 맡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도 건전성을 유지했다는 점이 배당 안정성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번 분기는 순이익의 크기보다 구조의 차이를 드러냈다. 하나금융은 손실을 제거해 이익의 질을 끌어올렸고, 우리금융은 이익을 낮추는 대신 자본을 끌어올려 다음 선택지를 확보했으며, 기업은행은 수익보다 신용 공급과 건전성 유지에 무게를 뒀다. 같은 금리, 같은 규제 아래에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숫자를 만들어내는 국면이다. 은행 간 격차는 더 이상 ‘얼마를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버티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갈리고 있다.
▲은행주, ‘자본 소모율’로 값 매긴다
은행주 재평가는 순이익 순위표에서 출발했지만, 시장이 실제로 값을 매기는 곳은 그보다 깊다. 핵심은 이익의 규모가 아니라 이익이 자본을 얼마나 덜 소모하면서 반복될 수 있느냐다. 같은 1조원의 순이익이라도, 위험가중자산을 많이 쓰고 얻은 이익과 수수료·자본시장·보험·카드에서 분산해 얻은 이익은 주가순자산비율(PBR)에서 다른 값을 받는다. KB금융이 앞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KB는 은행 이자이익을 중심축으로 두되, 증권·운용·카드·보험을 통해 이익의 출처를 넓혔다. 시장은 이를 단순한 계열사 다각화가 아니라, 금리 민감도를 낮추는 구조적 헤지로 읽는다. 자본을 덜 쓰고 ROE를 유지하는 은행이 결국 더 높은 PBR을 받는다.
하나금융은 ‘효율’의 이름으로 평가받는다. KB처럼 압도적 비은행 분산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손실과 비용을 낮춰 같은 자산에서 더 깨끗한 이익을 뽑아내고 있다. 대손비용률 0.21%와 CIR 38.8%는 공격적 성장보다 통제된 성장이 주가를 밀어 올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할인 요인은 성장 부재가 아니라, 이 구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 협력은 단순한 신사업 홍보가 아니다. 전통 은행의 수익 효율을 유지하면서, 다음 수수료 시장을 선점하려는 시도다.
우리금융은 손익보다 자본의 시간표가 중요해졌다. 1분기 순이익이 줄었다는 사실은 이미 가격에 반영됐다. 남은 질문은 CET1 13.6%가 실제 인수·합병, 증권 증자, 보험 완전자회사화, 자산 매각 이후의 그룹 ROE 개선으로 이어지느냐다. 자본비율은 높아졌지만, 그 자체로 주가를 올리지는 못한다. 자본은 쓰일 때 가치가 생긴다. 우리금융의 재평가는 “자본을 쌓았다”가 아니라 “그 자본으로 어떤 이익 기계를 새로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기업은행은 가장 다른 방식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이 은행은 비은행 확장 경쟁의 선두에 설 수 없고, 자본비율도 시중 금융지주보다 낮다. 대신 시장은 기업은행을 경기 하강기의 신용 안전판이자 배당 자산으로 본다. 중소기업 대출 264조2000억원은 수익성의 숫자이면서 동시에 정책 부담의 숫자다. 이 대출이 부실화되지 않고 NPL 1.28% 안에서 관리될 수 있다면, 기업은행은 고성장주가 아니라 안정 배당주로 재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경기 둔화가 길어지면 정책은행이라는 장점은 곧 자본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
4대 금융사를 가르는 기준도 달라졌다. KB는 자본을 덜 쓰고도 이익을 반복하는 모델, 하나는 손실과 비용을 억제해 할인율을 낮추는 모델, 우리는 쌓아둔 자본을 새 수익원으로 전환해야 하는 모델, 기업은행은 정책금융의 부담을 배당 안정성으로 상쇄해야 하는 모델이다. 은행주가 금리주에서 자본 배분주로 바뀌고 있다는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체를 갖는다.
▲투자 기준 이동, 자본의 행선지가 수익 가른다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은행주의 비교 기준은 이제 순이익 순위가 아니다. 자본을 어디에 배치했고, 그 자본이 다음 분기에 다시 같은 이익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KB금융은 프리미엄을 받을 자격이 가장 분명하다. 이익의 질, 비은행 기여도, CET1, 자사주 소각이 한 방향으로 맞물려 있다. 은행 본업이 흔들려도 증권·운용·카드·보험이 완충판이 되고, 쌓인 자본은 다시 주주환원으로 돌아간다. 시장이 KB를 비싸게 사는 이유는 단순히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덜 흔들리며 반복해서 벌 수 있는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뒤늦게 할인율을 낮추는 구간에 들어섰다. 4조원대 순이익, 1분기 최대권 실적, 낮은 신용비용은 이미 숫자로 확인됐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 협력은 하나금융의 밸류에이션을 은행업 평균 안에 묶어두지 않게 만드는 변수다. 다만 이 서사가 주가 프리미엄으로 굳어지려면 건전성 부담을 더 낮춰야 한다. 하나금융의 과제는 ‘얼마나 더 벌 것인가’보다 ‘현재의 깨끗한 이익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것인가’다.
우리금융은 위험과 기회가 가장 크게 엇갈리는 종목이다. 1분기 실적만 보면 약하지만, CET1 13.6%는 판을 다시 짤 수 있는 숫자다. 증권 증자, 보험 완전자회사화, 생명보험 합병, 자산 매각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금융이 쌓은 자본을 단순한 방어막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ROE를 끌어올리는 새 수익 엔진으로 바꿀 것인가. 이 전환에 성공하면 현재의 할인은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실패하면 자본은 많지만 이익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금융지주로 남는다.
기업은행은 공격적 상승보다 방어적 보유에 가깝다. 배당과 정책금융은 확실한 방파제다. 그러나 자본 유연성은 시중 금융지주보다 좁다.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일은 정책적 정당성이 있지만, 동시에 경기 둔화기에는 부실 위험을 떠안는 일이다. 기업은행의 투자 매력은 고성장보다 신용 공급을 유지하면서도 배당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투자자에게 이 변화는 주가의 문제지만, 고객에게는 대출 한도와 금융서비스의 문제다. 가계대출, 특히 주택 관련 대출은 한층 촘촘해질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은 더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손쉬운 이자이익 창구로만 삼기 어렵다. 대신 기업대출, 자산관리(WM), 퇴직연금, 외환, 비대면 제휴금융, 해외 네트워크로 자원을 옮길 수밖에 없다. 개인 고객은 더 빡빡한 대출 한도와 조건을 마주하게 되고, 기업 고객은 은행들의 영업 경쟁이 다시 거세지는 국면을 보게 된다.
자산가 고객에게는 은행별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KB는 자본시장과 종합자산관리, 하나는 글로벌·디지털 자산, 우리는 증권·보험 결합 상품, 기업은행은 정책·기술금융 기반의 기업 고객 서비스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파는 회사에서, 자본을 배치해 미래 수익을 설계하는 회사로 바뀌고 있다. 고객도 이 변화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더 까다로운 금융 조건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가 됐다. 은행주 투자는 더 이상 금리 방향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다. 자본을 어디에 태우고, 그 자본이 얼마나 빠르게 다시 이익으로 돌아오는지를 읽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주 재평가는 금리 방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앞으로 시장은 누가 대출을 많이 늘렸는지가 아니라, 누가 자본을 덜 쓰면서 반복 가능한 이익과 주주환원을 동시에 만들어내는지를 보고 가격을 매길 것”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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