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훈 더봄] 프라하에서 새 길을 눈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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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훈 더봄] 프라하에서 새 길을 눈 뜨다

여성경제신문 2026-04-27 13:00:00 신고

Gemini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 블타바강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AI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 블타바강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Gemini

이것은 대략 난감이 아니고 대량 난감이었다. 출발부터 삐거덕거린다 했더니 결국 여행 마지막 날에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다. 외국말이라고는 영어 겨우 몇 마디밖에 할 줄 모르는 우리 부부에게 영어권도 아닌, 무슨 말을 쓰는지조차 모르는 이 프라하에서 이틀을 알아서 지내라니 이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라 폭설 쏟아진 프라하에서 혹한을 만난 것과 다름없었다.

며칠 전 우리 부부는 결혼 30주년에 환갑까지 맞아 난생처음 유럽여행을 감행했다. 자식들이야 대학에 다니면서 애비 돈을 갖은 방법으로 우려내 40일간 유럽 일주니 캐나다 어학연수니 미국 동서 횡단 여행이니 싸돌아다녀들 왔지만 정작 우리는 등골이 다 휘고 정신도 조금 희미해질 때쯤 되어서야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은 것이다.

물론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등은 계 모임이나 친목 모임에서 소위 패키지라는 것으로 떼 지어 줄지어 몇 번 다녀오기는 했으나 말이 유럽여행이지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아나 프랑스 말과 독일 말을 구별할 줄 아나. 마누라 입에서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꼬부랑 글씨와 꼬부랑 말 앞에서는 오금부터 먼저 저리니 배낭여행은 애당초 포기하였다.

처음에는 애들처럼 더 늙기 전에 배낭여행 한번 시도해 볼까 하고 <이지 유럽여행> 이니 <50대도 혼자 떠날 수 있는 유럽여행>이니 하는 책들을 사다가 돋보기를 끼고 앉아 씨름도 해 보았으나 책을 보면 볼수록 겁 또한 켜켜이 쌓여가서 결국 패키지여행으로 낙착을 보고 말았다.
파리로 들어가서 2박을 한 뒤 스위스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마지막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2박을 하고 다시 파리로 가서 귀국하는 9박 10일의 일정이었다.

파리에 도착할 때부터 눈은 심상치 않게 내리고 있었다. 깃발을 들고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는 20년 만에 폭설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는 둥 이 상태로 가다가는 여행이 예정대로 진행되기 어렵겠다는 둥 여행 초장부터 초를 치기 시작했다.

말이 씨가 되었는가, 네 나라를 돌아 프라하에 도착하여 가이드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니며 주마간산 격으로 이틀 일정을 거의 끝낼 즈음에 프라하 공항이 폭설로 폐쇄되어 파리로 갈 수 없다는 비보를 접했다. 눈이 그치고 공항 제설 작업이 끝나야 비행기가 뜰 수 있는 데다가 유럽 전체 비행기 스케줄은 엉망이 되고 프라하에서 발이 묶인 여행객은 넘쳐나니 우리 일행은 가이드만 붙들고 비행기 표를 빨리 확보하라고 떼거리를 쓸 뿐이었다.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로 돌아온 여행객들은 대표를 뽑아 협상을 하자, 한국 본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자, 귀국이 늦어지면 사업상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 여행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대사관에 연락하여 비상대책을 요구하자는 둥 여행은 딴전이고 귀국 일자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세 다리 건너 청와대에 줄이 닿는지 어느 노신사는 청와대에 전화를 해서 여행사를 압박해 보겠다고 큰소리를 쳐봤지만 ‘세 다리 건너’ 정도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헛소리였다. 

계약상 천재지변으로 인해 여행 경비가 늘어나는 것은 여행사 책임이 아니라고 앵무새처럼 외워 대던 현지 직원과 일진일퇴 줄다리기 끝에 서울 본사에서 조건을 제시해 왔다. 이틀 뒤 항공권은 확보했으니 이틀 동안의 프라하 체류비 중 호텔 숙박비 절반만 지원해 준다는 것이었다. 대신 이틀간의 프라하 여행은 가이드 없이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대량 난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전까지는 유럽여행에 도가 튼 듯이 각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현지 가이드를 닦아세우며 설쳐대던 일행 중 몇몇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고 마누라에게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세상 모든 것 다 아는 체하며 떠벌리던 나 역시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가이드에게 이틀만 더 안내해 주면 안 되겠냐고, 가이드 비는 충분히 지불하겠노라 애원했건만 그는 계약이 끝난 데다가 다음 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우리 일행은 묵었던 호텔에서 몇 시간 난상토론 끝에 각자 알아서 여행하다가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 시각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다. 네 나라를 돌아다녀 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졸랑졸랑 따라다니던 가이드의 깃발과 서울서부터 그 이름을 들어왔던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몽블랑, 레만 호, 프라하 성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방문했던 성당은 어느 것이 어느 나라 것인지 헷갈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시차 문제가 아니라 나이 탓이 분명했다.

큰딸이 사 준 여행 안내서를 펴놓고 돋보기를 쓰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험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내가 다시 시험공부를 하는 꼴이었다. 무식이 최고의 용기라는 말만 굳게 믿고 우리 부부는 이튿날 아침 호텔 문을 나섰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낯선 타국에서 지도 한 장 들고 프라하 여행 첫날 가이드 깃발을 따라 줄지어 갔던 프라하 성을 다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안델 역에서 프라하 지하철 B선을 타고 구시가지 광장역에서 A선을 갈아타고 프라하 성 역에서 내리면 되지 않겠나, 하다 안 되면 무작정 걷자, 어제 가이드와 돌아다녀 보니 프라하라는 데가 서울의 강남보다도 작은 듯하니 두려울 게 없다 하는 심정이었다. 이참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 에 출연하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했다.

두 시간 남짓 걸어서야 찾아낸 눈 덮인 프라하 성은 압권이었다. 눈 덮인 프라하 시가지와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은 내 생애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가이드를 잃을까 봐 깃발에만 눈이 꽂혀 그가 보라는 것만 보아야 했고, 설명하는 것만 아는 체했고, 시간을 정해 주고 모이라고 하면 늦을까 봐 쫓기듯 종종걸음으로 집결지에 모였는데, 폭설을 밟으며 성 비투스 성당을 비롯해 황금 소로라는 데까지 찾아가 카프카라는 소설가가 살던 작은 집까지 찾아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프라하 성을 나와 황금 소로 입구에서 소시지에 맥주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랜 후 무작정 카를 교까지 걷기로 했다. 카를 교의 조각상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다시 걷다 보니 강변 건물에 카프카 박물관이 눈에 띄기에 그곳에도 가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얻은 우리 부부는 밤에 구시가지와 바츨라프 광장까지 진출하여 보드카에 체코 닭요리를 먹어 대며 ‘우리는 보헤미안이다’를 속으로 외쳐대기까지 했다.

이튿날 용기백배한 우리 부부는 가이드를 자청하여 일행 중 두 쌍의 부부를 더 끌어들여 다시 구시가지 광장에 나가 구시가지 청사 옥상 전망대, 성 니콜라스와 베네딕트 생애가 그려진 성 니콜라스 성당, 화약탑, 크리스털 골목까지 구석구석 안내하며 섭렵할 수 있었다. 천문시계 앞 노천카페에서 마신 핫 와인은 유럽여행의 음료 중 가장 오래도록 그 맛이 혀끝에 남을 만했다.

유럽여행의 가장 큰 소득은 남을 따라다니는 길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찾아 나선 길이 내 길이고, 내 길에서 보고 느낀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임을 환갑의 늙다리가 되어서야 눈 하나 겨우 떴으니 이젠 큼지막한 배낭이나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꿈을 꾸었다.

주마간산(走馬看山)=말을 타고 달리며 산을 구경한다는 뜻으로, 사물의 겉모습만 대충 훑어보고 지나침을 이르는 말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 깊이 있게 보지 못하는 패키지여행의 특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여성경제신문 이진훈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전 영동고 교사
mokleeyd@nate.com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이진훈 작가·교육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EBS와 고등학교에서 오랜 시간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으로 <베이비 부머의 반타작 인생> 을 펴냈으며,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사)K문화독립군 부회장 등 다양한 문화 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한양도성의 역사와 철학을 담은 저술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양도성 文史哲  순성놀이> 를 발간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전례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명절 차례와 기제사> 를 발간하는 등 전통문화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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