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부터 매년 두 번, 5월 1일 노동절과 11월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는 민중문화와 현장과 노동자 문화가 총결집하는 자리였다. 그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삶을 말하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광장이었다.
1990년 3월 나는 대학 민주광장에서 백기완 선생의 강연을 들었다. 후배들을 데리고 갔던 그 자리에서 선생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을 흔들었다. 그날이 내가 문화활동을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 노동운동이 거세게 성장하면서 민중문화 역시 함께 확장되었다. 노래패, 풍물패, 연극패, 미술패가 전국 곳곳에서 생겨났고, 현장은 언제나 예술의 무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시대의 흐름은 달라졌다. 신자유주의의 확산, 노동운동의 약화, 대중문화의 상업화 속에서 민중문화의 공간은 점차 축소되었다. 투쟁의 현장에서 예술이 설 자리는 줄어들었고, '민중문화'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들린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민중문화의 의미를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민중문화란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태어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예술이 아니라,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예술이다.
지난 33년 동안 나는 수많은 투쟁의 현장에서 기획자로, 동료로, 때로는 기록자로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다. 현장은 언제나 예술을 필요로 하고, 예술은 언제나 현장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삶의 절박함이 예술을 밀어 올리고, 예술은 다시 삶을 지탱한다.
노동절 전야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을 기획하며 나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백기완 선생은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변화가 더디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질문을 던지고, 길을 밝힌다.
'한바탕'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를 노래하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춤추고, 전쟁 없는 세계를 그려내는 집단적 상상력의 장이다. 예술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바꿀 수 있는 힘을 사람들 안에 일깨우는 일. 그것이 민중문화의 역할이며, 우리가 한바탕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가치다.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 공연은 1989년 최초의 4.30 노동절 전야제에 함께 했던 민중문화예술 '노동자 대투쟁 세대'와 2026년 청년 민중가수 오디션을 통과한 '윤석열 탄핵 세대'가 만나는, 문화문화예술의 역사가 부활되는 시간이다.
민중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삶의 언어로, 투쟁의 언어로, 예술의 언어로. 그 길을 다시 열어가는 데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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