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100GW 보급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 시장 제도는 여전히 과거 화석연료 시대의 틀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태양광과 풍력의 변동성을 조절할 ‘구원투수’인 가상발전소(VPP)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낡은 규제 탓에 시장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기후 싱크탱크 기후솔루션(이사장 김주진 변호사)은 27일 이슈브리프 ‘변화하는 전력산업, VPP·ESS는 왜 제자리인가’를 통해 한국 전력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비판하며 전면적인 제도 개편을 촉구했다.
브리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망은 불안정해진다. 낮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남아돌아 강제로 발전을 중단(출력제어)해야 하고, 해가 지면 다시 전력이 부족해 급히 화력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핵심 수단이 ESS와 VPP다. ESS는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대형 배터리’이며, VPP는 산재한 소규모 재생에너지를 IT 기술로 통합 제어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지능형 시스템’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현행 전력시장이 연료비가 드는 대규모 석탄·가스 발전기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이들 신산업의 가치를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브리프는 특히 세 가지 제도적 허점이 VPP와 ESS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실시간 가격 신호의 부재’다. 우리 전력시장은 하루 전 세운 계획에 따라 운영된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널뛰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실시간 시장이 없다 보니 전기가 쌀 때 충전하고 비쌀 때 방전해야 할 배터리가 자율적으로 움직일 유인이 없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화력발전 중심의 보상 체계’다. 브리프는 전력망 안정에 기여한 자원에 주는 보조서비스 보상 기준이 연료비 위주로 짜여 있다 보니, 연료비는 없지만 응답 속도가 월등히 빠른 배터리의 ‘정밀 제어 능력’은 시장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끝으로 ‘불공정한 입찰 룰’이다. 재생에너지는 시장 가격 경쟁에 노출시키면서도, 기존 화력발전은 최소가동 구조 등을 통해 보호받는 구조여서, 계통 운영의 부담과 출력제어의 고통은 고스란히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집중된다는 설명이다.
기후솔루션은 독일과 호주의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독일은 당일 전력 거래 시장을 통해 재생에너지 오차를 시장 내에서 해결하며, 호주는 배터리와 VPP가 보조서비스 시장에서 화력발전과 대등하게 경쟁하도록 길을 열어 전력망 안정화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김선규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시장은 설계된 대로 움직인다. 빠른 응동과 정밀 제어에 보상하면 배터리와 VPP가 들어오지만, 지금처럼 연료비 구조로 보상하면 화력발전만 남게 된다”며 “제주에서 확인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시간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의 육지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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