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지갑 속 얇은 플라스틱 한 장. 그러나 이 작은 카드 한 장이 바꿔놓은 풍경은 결코 얇지 않다. 신용카드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계약 위에 세워진 현대 소비의 상징이다. 그 시작은 의외로 소박한 식사 자리에서 비롯됐다.
1949년, 미국 뉴욕의 한 레스토랑.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식사를 마친 뒤 계산을 하려다 지갑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식당 사장과 잘 아는 사이여서 그는 외상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사실 이런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 였지만 프랭크는 좀더 독특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현금 없이도 신뢰로 결제할 수는 없을까”라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이듬해 탄생한 것이 바로 다이너스 클럽 카드다. 처음에는 종이 카드 형태였지만,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나중에 돈을 내는’ 새로운 소비 문화를 열었다.
이후 신용카드는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한다. 195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플라스틱 카드를 도입했고,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카드 시스템의 기틀이 마련됐다. 신용은 곧 데이터가 되었고, 소비는 기록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 이 ‘신용의 시대’에 합류했을까.
우리나라에 신용카드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0년대 말이다. 1969년,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신세계백화점이 자체 고객을 대상으로 ‘외상카드’ 형태의 서비스를 선보인다. 오늘날의 신용카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카드 한 장으로 물건을 사고 나중에 결제한다’는 개념의 첫 실험이었다.
신용카드 시대는 1970~1980년대를 거치며 열린다. 1978년, 국내 최초의 은행계 카드인 비씨카드의 전신이 등장하면서 금융권이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당시만 해도 카드 발급 기준은 까다로웠다. 안정된 직장,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 했다. 한때 카드를 들고 다닌 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신분증처럼 여겨졌다.
카드는 고신용의 상징이었고 중산층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1980년대 초반, 한 대기업 신입사원이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뒤 회식 자리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식당 주인이 이를 받지 않아 결국 현금을 찾으러 은행으로 뛰어가야 했다.
“카드가 뭐냐”는 반응이 자연스러웠던 시절, 신용이라는 개념은 아직 일상 속에 스며들지 못했던 것.
하지만 변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1990년대 들어 카드 사용처가 늘고, 정부가 소비 진작과 세원 투명화를 위해 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신용카드는 급속히 확산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카드 발급이 급증하며 ‘카드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카드사마다 다양한 혜택을 장착하고 카드 발급을 남발했다. 카드회사는 날로 성장했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카드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현금이 아닌 카드를 쓰다 보니 자신이 얼마나 소비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지면서 카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현금서비스(카드론) 이용이 급증하면서 카드 연체와 불량이 촉증했다. 카드 발급이 과도하게 확대되고 여러 카드를 돌려막아 갚는 방식이 늘며 연체율이 크게 상승했고 카드사와 신용불량자 수가 급증했다.
카드 대란이라는 그림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현금 중심에서 신용 중심으로 소비 구조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오늘날 신용카드는 다시 한 번 변신 중이다. 플라스틱 카드조차 사라지고, 스마트폰 속 디지털 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를 사고파는 일. 뉴욕의 한 식당에서 시작된 작은 난처함이, 이제는 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자라난 셈이다.
카드 한 장에는 숫자와 이름만 적혀 있지만, 그 뒤에는 시대의 욕망과 신뢰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뉴스컬처 최병일 skyc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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