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을 앞두고, "대화를 하자"고 외치던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원청은 교섭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하청 노동자의 적법한 권리 행사를 공권력으로 제압하고 정당성을 따지는 주장에 재갈을 물렸으며, 이 과정을 경찰과 정부는 기업의 입장에서 공조·방관했다. 지긋지긋하게도 익숙한 구조다. 그래서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서모 지부장의 죽음은 축적된 구조의 귀결, 사회적 죽음이다. 그 사회적 죽음에 개입하여 구조를 바꿔내는 것이 우리가 그의 희생을 기억하며 애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사장 나와라"
CU화물노동자는 원청 BGF리테일로부터 5단계 연쇄하청을 거치며 최말단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다. 형식과 실질이 불일치하는 이 구조는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동시에 회피하는 가장 정교한 방법이다.
이번 사건에서 자주 언급되는 노동자성이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제로 타인의 지시와 통제 하에 종속적으로 일하고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ILO 고용관계 권고 제198호). 사용자성이란 누가 그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교섭 의무와 법적 책임을 지는가를 말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원청은 "우리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고,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 나오라"고 외친다.
화물 노동자는 실제로는 원청으로부터 업무지시, 작업감시, 물량배정, 근태평가를 받는다. 아파서 쉬어야 할 때는 건당 운임의 2배에 달하는 대차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저운임에 '하루 13시간 월 325시간'이라는 지속불가능한 노동을 감당했다. 과로로 인한 사망, 고용불안정에 따른 정신건강 악화, 아파도 쉴 수 없는 구조는 화물 노동자들이 직면한 건강권 침해의 실체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구조는 왜 개선되지 않는가
CU 화물 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의 이중적 지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외주화하며 노동자에게 비용과 위험을 전가하면서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다단계 하도급은 수십 년간 산업계의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서비스·유통 산업의 확대와 플랫폼노동의 등장으로 노동자성 인정 여부는 다수 노동자의 문제가 되었다. 결국 쟁점은 법적 보호를 받는 노동자를 누가 정의하는가에 관한 권력의 문제이다.
실제 업무방식에 따라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전향적인 사법 판결들이 개별 사안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고, 올해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실질적 지배력"을 사용자성 판단기준으로 삼으면서 최근 원·하청 교섭 심판에서 사용자성이 대폭 인정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특수고용구조는 노동자를 비가시화할뿐 아니라, 조직화와 집합적 저항 자체를 어렵게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노동자와 고용주의 경계가 흐려진 회색지대를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안정한 법적 지위와 노사간의 불평등 구조는 30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것이 BGF리테일이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흐름에 맞서며 올해만도 지난 1월부터 7차례나 보낸 교섭요청을 거부한 이유다. 또 파업 노동자의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대체수송을 강행했다. 교섭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적 거부, 자본의 계급적 결단이다. 서광석 지부장이 사망한 이후에는 언론을 통해 가맹점주와 소비자들의 피해를 부각하는 낡은 선동까지 한결같다. 이런 구조가 기업에게 얼마나 큰 이익이 되는 구조인지는 수치로 증명된다.
국가 역시 사용자성을 회피하고 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24년 3월, 2022년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복귀 명령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한국 정부에 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2022년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던 윤석열 정부와, 노란봉투법을 만들고도 사망한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규정했던 이재명 정부는 방식은 달랐지만 노동자를 법적 보호 밖으로 밀어냈다는 결과는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국회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빌미가 되는 노동쟁의조정법상 면책 규정의 불명확성을 해소하지 않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 권리에 대한 실효적 제재가 무력한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한 달 동안 1011개 하청노조가 372개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는데, 이중 공공부문은 156개 원청을 대상으로 395개 하청노조에서 제기했다(☞관련자료). 그러나 정부는 공공기관 노동자의 인건비·인력·복리후생을 총인건비 지침으로 결정하면서도, 공공기관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부정하고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는 "정부는 악덕 사용자의 모범"이라고 일갈했는데, 이것이 정부가 화물노동자를 소상공인∙개인사업자에서 노동자로 부르는 데 며칠이나 걸린 이유다.
노동자의 계급적 결단에 응답하라
CU화물연대 투쟁 전후로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 지부장이 부당하게 구속됐고(4월 17일), 아리셀 참사 경영책임자 박순관 대표는 항소심에서 형량이 대폭 감형되었다(4월 22일). 전자는 노동자의 정당한 저항을 형사로 봉쇄한 것이고 후자는 안전보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23명의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 책임자를 면책한 것이다.
국가는 왜 교섭에 불응하는 기업을 질책하며 준법을 요구하지 않는가. 경찰은 왜 기업의 시설보호 요청에만 협조하고 헌법에 명시한 정당한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밀어냈는가. 시민이 화물 노동자의 파업을 비난하게 만들고, 노동자와 노동자가 대치하게 만든 것도 자본과 국가의 책임이다. 자신들의 헤게모니와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사법·형사의 조력과 비호를 동원하는 기만적인 방식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CU 화물 조합원들이 교섭에 난항을 겪자 연대하려고 합류했던 서 지부장은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소속 컨테이너 기사였다.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아니었지만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한 제도가 바로 잡히는 사회, 노동자가 노동자로 불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동료와 함께 자본과 국가에 맞선 것이다. 과도하게 비대해진 국가와 자본의 권력으로부터, 시민과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경계를 확장하려는 계급적 결단이자 실천이었다.
다가오는 5월 1일 노동절, 앞장선 노동자들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하자. 노동자의 비통한 죽음이 더는 없도록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의 계급적 결단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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