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삼성전자 노조, '성과급 잔치' 넘어 '상생의 초격차'로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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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삼성전자 노조, '성과급 잔치' 넘어 '상생의 초격차'로 나서야

비즈니스플러스 2026-04-27 08:56: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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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라는 시구(詩句)가 이토록 서늘하게 다가온 적이 없다. 삼성전자 노조의 역대급 파업 예고를 보며 이 시를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 40여년간 대한민국이 쏟아온 피와 땀은 형언할 수 없지만, 그 꽃이 시들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인의 읊조림처럼 '아주 잠깐'일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 동안 파업을 예고했다. 노조는 최근 대규모 집회를 통해 파업이 경고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과시하고, 이재용 회장 등 회사 경영진의 사진을 찢는 등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듯이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 23일 집회 당일 야간 시간대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의 생산 실적이 58.1% 급감했고, 메모리 생산 실적은 18.4% 떨어졌다고 밝히면서 사측은 물론 한국경제 전체에 경고장을 보내고 있다.  

노조가 파업에 따른 피해 규모를 '30조원'이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위협하는 풍경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노조가 앞장서서 하고 있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문제는 30조원이라는 구체적인 피해 숫자가 아니라 '선운사에서'라는 시에 등장하는 꽃처럼 아예 시들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1년 또는 몇 년을 기다려야 다시 한번 개화(開花)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반도체라는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30조원' 공포 마케팅과 보이지 않는 비용, 신뢰의 붕괴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열린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재무적 손실보다 구조적 타격이 더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업 장기화시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감소 규모는 최대 1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 핵심 리스크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삼성전자 노조파업의 파급효과'를 주제로 발표했다. / 자료=안민정책포럼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삼성전자 노조파업의 파급효과'를 주제로 발표했다. / 자료=안민정책포럼

반도체 산업의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 AMD,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공급망 안정성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와 물량 배분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파업으로 인한 단 한 번의 라인 중단은 수만장의 웨이퍼 폐기를 넘어, '삼성은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위험한 파트너'라는 낙인을 찍는다. 한 번 깨진 글로벌 신뢰는 파업이 끝난다고 해서 복구되지 않는다. 특히 기술 격차를 좁혀야 할 파운드리 부문에서 고객사들이 TSMC로 발길을 돌린다면,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 동력은 영원히 거세될 수 있다.

노조가 자랑하는 집회가 외신에 크게 보도된 후 글로벌 기업들의 관련 문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영업이익 15%' 요구의 무모함, 미래를 가불하는 단기주의

현재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OPI)으로 상시화'하고 성과급 캡(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2026년 현재, 삼성전자가 직면한 경영 지표를 살펴보면 이 요구가 얼마나 무모한지 금방 알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 산업이다. 노조는 호황기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보상을 요구하지만, 업황이 어려웠던 2023~2024년 사측이 감내한 리스크는 도외시하고 있다.

노조 측 분석에 따르면 18일간의 파업시 설비 백업 등을 고려할 때 최대 20조~30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는 차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 연구개발(R&D)과 파운드리 시설 투자에 투입되어야 할 혈세와 다름없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이미 올해 초 연봉의 47%에 달하는 OPI를 지급받았다. 국내 대기업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더 달라"는 식의 요구는 '귀족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업이 불러올 '부메랑' 역시 사측은 물론 노측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반도체는 24시간 가동되는 미세 공정의 집약체이다. 단 한 번의 라인 멈춤은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수만 장의 웨이퍼 폐기로 이어진다. 엔비디아,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공급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는데 잦은 노사 갈등과 파업 예고는 삼성전자를 '불안정한 파트너'로 각인시켜, 수주 경쟁에서 경쟁사인 TSMC나 SK하이닉스에 우위를 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삼성은 AI(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인 HBM 시장에서 추격자의 입장이다. 전열이 흐트러지는 순간, 기술 격차는 좁힐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질 것이다. 

지난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 /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 / 사진=연합뉴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과급 45조'라는 숫자의 성격이다. 이 금액은 삼성전자가 연간 R&D에 투자하는 약 37조~38조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미래를 위한 씨앗(투자)보다 당장 먹을 열매(보상)가 더 커야 한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한 해 미래 기술에 투자할 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단기 보상으로 지급하라는 요구다. 반도체 산업의 본질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위험한 구조다. 반도체는 '돈의 전쟁'이다. 매년 수십조원의 설비 투자와 R&D가 지속되지 않으면 단 한 세대의 기술 격차로도 시장에서 탈락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매년 30조~40조원 규모의 시설 투자를 집행하고 있으며,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이익이 났을 때 이를 현금 보상으로 대거 소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반도체 산업은 4~5년 주기의 경기 사이클을 가진다. 호황기에 축적한 자금이 불황기의 생존 자금이 된다. 만약 호황기의 이익을 대부분 성과급으로 소진한다면, 다음 불황에서는 투자 축소와 기술 후퇴가 불가피하다. 

글로벌 경쟁 환경도 녹록지 않다.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일본 정부가 전폭 지원하는 라피더스까지 가세한 상황에서 반도체 패권 경쟁은 이미 국가 총력전 단계에 들어섰다. 

경쟁국들은 막대한 보조금과 정책 지원으로 기업의 투자 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한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성과급 총량 확대 경쟁'은 방향이 다소 어긋나 있다. 예컨대 TSMC는 영업이익의 약 5~10%를 보상 재원으로 활용하지만, 개인 성과와 기술 기여도를 정밀하게 반영한다. 반면 '이익의 일정 비율을 일괄 배분'하는 방식은 투자 재원을 자동적으로 줄이는 구조를 만든다.

최근 정치권에서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는 반도체 단지를 태양광 전력 등이 풍부한 새만금 등 호남 지역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도체, 더 나아가 AI 집적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규모 전력공급이 필수적인데 현재 우리나라 전력 생산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보정권에서 부담이 되는 원전 건설까지 논의되고 지역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역 전력망을 수도권으로 이동시키는 전력고속도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흐름을 뒤집어 말하면 삼성전자라는 기업을 키우기 위해 국가적 역량이 총집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국가경제를 볼모로 삼아 아예 셧다운까지 거론하는 노조의 강경대응은 국민여론에서 역풍을 맞을 것이 불문가지이다. 특히 주가에 악영향을 줄 경우 국민적 반발도 예상된다. 삼성전자 노조 활동에 반대해온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노조에 반대하는 맞불집회를 진행할 예정인데 물론 규모는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린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의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결의문을 읽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린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의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결의문을 읽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조 커뮤니티 일각에서 "어차피 반도체 호황은 몇 년 뒤 사라질지 모르니 지금 3년간 30억쯤 챙기면 회사가 망해도 괜찮다"는 식의 발언이 공유되고 있다는 소식도 우려할만 하다. 이는 노조 전체의 공식 입장이라기보다는 일부 조합원들의 정서지만, 파업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이런 한탕주의적 사고는 반도체 산업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기에 축적한 자금이 불황기의 생존 자금이 되며, 이를 기반으로 설비 투자와 R&D가 이어진다. 그러나 호황기에 이익을 대부분 성과급으로 소진한다면, 불황기에 투자 축소와 기술 후퇴가 불가피하다. 이는 결국 고용 안정성 자체를 무너뜨리고, 노조가 원하는 고임금 구조도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노동조합의 존재 목적은 근로자의 권익 향상이지만, 그 전제 조건은 '회사의 생존'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장기적 고용 안정과 산업 경쟁력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보상 극대화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생 구조일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일본, 대만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삼성의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에서 내부의 총질은 공멸을 의미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파업의 깃발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세계 1위를 탈환하기 위한 '원팀(One Team) 정신'이 아닐까.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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