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 드리운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경매 법정으로 고스란히 옮겨붙고 있다. 주택과 상가, 공장을 가리지 않고 담보물건 처분 요청이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1∼3월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총 3만541건을 기록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는 2013년 1분기(3만939건) 이후 동일 기간 기준으로 13년 만의 최고치다. 채권자가 법원에 담보물건 매각을 새로 요청한 수치인 만큼, 유찰 물건이 쌓이는 입찰 건수보다 실물 경기 흐름을 더 민감하게 드러내는 지표로 평가된다.
연간 통계를 살펴보면 악화 속도가 뚜렷하다. 2023년 신규 물건 수는 10만1천145건으로 2014년 이후 처음 10만 건 벽을 넘었고, 2024년에는 11만9천312건, 지난해에는 12만1천261건까지 치솟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12만4천252건) 이후 16년 만의 최대 규모다.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급격한 금리 인상의 충격파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형국이다.
주거시설 경매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진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집계에서 지난해 주거시설 입찰 건수는 10만8천742건으로, 금리 인상 전인 2021년(4만8천280건)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올해 1월부터 4월 말까지 입찰 예정분을 포함한 진행 건수도 4만2천195건에 달해 전년 동기(3만2천132건)보다 1만 건 이상 많다.
비아파트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전세사기 확산과 임대사업자 보증 축소가 겹치면서 4월 주거시설 경매 1만2천426건 가운데 연립·다세대 등 빌라가 8천973건으로 72.2%를 차지했다. 이는 2006년 12월(1만2천554건) 이후 19년 4개월 만의 월간 최대치다. 반면 아파트는 3천453건(27.8%)에 그쳤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양상이다.
상업·업무시설도 심상치 않다. 온라인 소비 확대로 공실이 늘고 수익성이 악화된 상가들이 대거 경매장으로 밀려들었다. 지난해 상업·업무시설 입찰 건수는 7만92건으로 전년 대비 43%(2만 건 이상) 폭증했으며, 올해 4월에는 8천252건을 기록해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낙찰률이 10∼20%대에 머물러 입찰이 거듭될수록 미매각 물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지옥션 이주현 전문위원은 "자영업자 폐업 증가와 주요 상권 공실 확대가 상가 경매 급증과 맞물린다"며 "과거에는 대형 테마상가 구분 점포가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강남권 꼬마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 경매가 늘고 유찰 사례도 많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치동의 한 소형 빌딩은 감정가 97억8천800여만 원에서 두 차례 유찰 끝에 최저가가 62억6천만 원으로 떨어졌고, 신사동의 한 건물 역시 감정가 445억여 원에서 64% 수준인 285억 원에 3차 입찰을 앞두고 있다.
산업 부문 지표도 어둡다. 공장 등 공업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이달 1천222건으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이후 실물 경기가 반등 계기를 잡지 못한 데다 최근 금리 인하 속도마저 느려 경매 물건 증가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전국 법원들은 급증하는 입찰 일정을 감당하기 위해 올해 경매계를 지난해보다 약 100개 늘린 413개로 확대 운영 중이다. 법무법인 명도 강은현 경매연구소장은 "연초부터 신건이 쏟아지는 흐름을 보면 올해 신규 경매가 12만 건을 넘어 2009년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전반적인 침체 속에 일부 인기 아파트로만 수요가 쏠리는 초양극화 현상이 한층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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