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앞다퉈 끌어올리고 있다. JP모건은 기존 2.2%에서 3.0%로 대폭 상향했으며, 씨티와 골드만삭스 역시 각각 2.9%, 2.5%까지 수치를 높여 잡았다. 정부가 연초 제시했던 2.0% 목표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처럼 기대감이 높아진 배경에는 한국은행이 지난 23일 내놓은 1분기 GDP 성장률 속보치가 자리한다. 1.7%를 기록하며 당초 예상치의 거의 두 배에 달했고, 이는 2020년 3분기 이후 5년 6개월 만의 최고 실적이다.
정부 측은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3일 회의에서 반도체 수출 호조와 함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소비 진작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중동 사태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24일 브리핑을 통해 반도체 생산·수출의 폭발적 성장세와 정부의 과감한 정책 대응이 경제 회복 흐름을 뒷받침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러한 표면적 호조 뒤에는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국 경제의 실질적 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1%대 중반으로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 없이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해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 수준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에 대해 OECD는 올해 1.71%, 내년 1.57%로 점차 하향 전망하고 있다. KDI 추산치도 작년 1.8%에서 올해 1.6%로 낮아졌으며,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역시 지난 1월 2.1%에서 1.9%로 전망치를 내렸다.
1분기의 깜짝 성장이 실제 경제력 향상을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역대급 저성장을 기록한 작년의 기저효과, 반도체 업종 쏠림 현상, 환율 변동 등이 만들어낸 착시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네 차례의 경제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가장 부진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높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해당 산업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성장률이 1%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가톨릭대 양준석 교수는 현재의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반도체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성장률 1% 달성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근본 원인으로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노동 투입 감소, 반도체 외 제조업 수익성 악화, 건설투자 위축으로 인한 자본축적 둔화 등이 지목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서비스업 낙후로 생산성마저 정체되면서 전 부문에 걸쳐 하락 압력이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 하강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인구구조 문제의 즉각적 해결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자본축적과 총요소생산성 향상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광석 실장은 반도체 호황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위산업 등 새로운 주력 산업 육성과 AI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생산성 제고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의료·관광 분야의 규모의 경제 실현, 통신·소프트웨어 영역의 경쟁 촉진, 부동산·유통·교육 부문의 구조개편 등을 원칙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준석 교수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뒤처진 규제 환경과 시장 경쟁 여건을 핵심 과제로 꼽으며, 대형마트 규제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도 손대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구윤철 부총리는 SNS를 통해 올해를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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